10년 만에 신작 낸 천명관 “증오 심해진 요즘, 지옥 같은 현실 속 공감 담아” [현장]

입력 2026-06-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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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신간 ‘아코디언’ 출간 기자간담회

한국전쟁, 우리 사회 지형을 만든 근원적 사건...여전히 그 거대한 자장 안에 있어
공감 사라지고 혐오 가득한 ‘선망의 시대’ 안타까워...“부조리한 사회 계속 쓸 것”

“영화를 하느라 충무로에서 10년을 보냈다. 이번 소설은 집필과 개작에만 전체적으로 3년의 세월이 걸렸을 만큼 내게는 가장 지난하고 힘들었던 작업이었다.”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아코디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천명관 작가는 “30대와 50대를 영화판에서 보내며 파산도 경험했지만, 남은 삶은 결국 소설을 쓰며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천 작가의 신작 ‘아코디언’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은 1950년대 서울 해방촌이 배경이다. 앵벌이 조직의 착취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밑바닥 고아 아이들의 잔혹한 생존 투쟁과 연대를 그렸다. 주인공 ‘동이’가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앵벌이 굴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부조리를 겪다가 운명처럼 만난 아코디언 선율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연주해 나가는 이야기다.

천 작가는 “젊은 시절에는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다루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지만, 결국 문학은 개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라며 “가장 비참한 밑바닥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입체적인 복잡성에 마음이 끌려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은 인류사에 드문 거대한 비극”이라며 “현재 한국 사회의 지형을 만든 근원적인 사건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자장 안에 있다”라고 진단했다.

작품 속 핵심 소재인 악기에 대해 천 작가는 “아코디언은 거리의 악기다. 특유의 소리에는 아련한 집시적 슬픔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면도칼이 죽음을 뜻한다면, 아코디언은 죽음의 반대말이자 살아남으려는 생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전작 ‘고래’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사실적인 리얼리즘 형식을 취한 배경에 대해서는 “현실의 불평등과 착취, 부조리를 담으려고 일부러 판타지적 요소를 억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쓰던 버릇이 남아 풍경이나 행위를 영화적 지문처럼 묘사해 독자들이 더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 작가는 우리 사회가 타인을 적대시하는 ‘선망의 시대’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묵직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그는 “어릴 때는 하위 계층의 삶을 다루며 온기를 느끼는 공감의 문학이 있었는데, 요즘은 재벌들의 삶을 라이브로 선망하는 시대가 되며 공감은 사라지고 혐오만 심해졌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내 눈에는 여전히 사회의 아픈 곳들이 보인다”며 “누구나 비슷한 고민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공감이야말로 문학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영상화 작업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소설을 구상할 때부터 머릿속에 영화적인 이미지들을 띄우는 편이다. 늘 카메라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리며 소설을 쓴다. 그래서 읽는 분들이 ‘그림이 그려진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며 “현재의 행위나 풍경 같은 사실적인 진술과 묘사를 많이 쓰는 편이라 그런 느낌을 주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날 천 작가는 ‘고래’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일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부커상 후보에 오른 것은 그냥 내 인생의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다”며 “인생의 마지막은 소설을 쓰면서 남은 삶을 보내야겠다고 미리 구상했었다. 그 일 때문에 소설을 쓴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이다”라고 말했다.

간담회 끝에 천 작가는 “어떤 분은 눈물을 흘릴 수도, 또 어떤 분은 다소 불편하게 보실 수도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번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정말 많이 애쓰고 치열하게 노력한 만큼,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제가 쏟아부은 노력과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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