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시대 수혜 속에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자 정치권에서 ‘반도체 초과이익’과 사회적 환원을 잇달아 언급하면서 논쟁이 커지고 있다. 정부·정치권 일각에서는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사회 전체와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업계와 학계에서는 단순 현금 재분배보다 미래 산업 투자와 인재 육성, 연구개발(R&D) 생태계 구축 등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28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부는 기업의 정당한 이익에 강제적으로 관여할 권한도 없다”고 밝혔다. 최근 논란이 된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한 것이다. 김 장관은 전날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사회적 대화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국민 배당금’을 언급하며 AI 인프라 시대의 성과가 특정 기업만의 결과는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다만 두 고위 공직자의 발언 모두 ‘초과이익’의 범위와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인세로 확보된 세수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간 기업의 영업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미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기업 이익을 정부 주도로 사회 재원으로 재분배하려는 접근 자체가 시장 원리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익이 늘어나면 정부 지원 덕분이라고 하면서 반대로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정부가 책임질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며 “민간 기업이 얻어낸 이익을 정부가 주도해 환원시키는 방식이 현행 제도 안에서 가능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나는 세수와 이익을 미래 산업 경쟁력 강화에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AI 취약계층과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단순 현금 지급보다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변화에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 자립 환경 조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래 기술과 신기술 개발, 그리고 이를 이끌 인재 양성”이라며 “이번 사례를 계기로 이익에 대한 정의와 기준을 보다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이 반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차원에서도 초과이익을 보다 장기적인 산업 생태계 강화에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와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공동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벨기에 국제반도체연구개발기구(IMEC)와 유사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며 “반도체 인재 양성과 중소 협력사 지원, 공동 연구개발 기반을 함께 확대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산업 생태계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전날 향후 5년간 총 5조원을 투입해 협력사 지원과 미래 인재 육성 등 사회적 책임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수익을 단순 배당이나 일회성 환원에 그치지 않고 산업 생태계와 국가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