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 연관되어 세간에 큰 화제가 된 유튜브 동영상이 있다. 한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개최하는데,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인근 주민들을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영상이다. 학창시절 운동회 때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놀던 추억이 있는 세대에게는 충격적인 행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요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는 무조건 무승부로 끝나야 하며, 상장 수여 또한 교무실에서 은밀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실패감이나 좌절감을 느끼는 것을 막고자 하는 조치이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환경이 아이들을 온실 속 화초로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과 관계된 모든 문제의 비난 화살은 언제나 그렇듯, ‘엄마’들에게로 향한다. 자녀를 과보호하려는 엄마의 악성 민원 때문에 이런 사태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악성민원은 필자가 자라던 1990년대에도 있었다. 문제는 이를 여과할 수 있을 만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엄마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수년 동안 이어진 저출산으로 인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동네의 어른들, 심지어 학교 교사들마저도 점점 아이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잊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성숙하며, 우리가 기대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미성숙하다. 예컨대, 만 7~10세 아이들의 정서적 회복탄력성은 어떤 방면에서는 성인들보다 뛰어나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대인 갈등, 금전적 손해 등의 정서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른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겨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칫 어른이 우울감이나 분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만한 일에 대해서도 놀라운 속도로 회복한다.
한편, 이 시기의 아동은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때이기도 하다. 뇌의 전두엽은 인간의 신체적, 정서적 조절 능력을 담당한다. 그런데 이런 전두엽 발달은 어른들의 훈육보다 개방된 공간에서 또래와 부대끼며 스스로 한계를 터득하는 것을 통해 훨씬 더 잘 이루어진다. 운동장에서 다치더라도, 운동회가 다소 시끄럽더라도 아이들한테 맘껏 뛰고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활동이 꼭 필요한 이유다.
독수리는 자신의 새끼들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 처음에는 낮은 바위, 그 다음 높은 바위, 그리고 마지막에는 높다란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린다. 학교는 아이들이 날갯짓을 연습하는 낮은 바위이다. 아기 독수리들이 처음 바위를 뛰어내릴 때의 두려움, 잘 날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을 이겨내야 하늘을 날 수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학교생활에서의 크고 작은 시련을 이겨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초등학교 교육이 ‘보호’만이 아닌 ‘성장’을 함께 균형 맞출 수 있도록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