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로봇에 감정 입히는 물리학 ‘대칭성’

입력 2026-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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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제법 오래 했지만 매번 긴장하는 파트가 있다. 회전운동이 그중 하나다. 강의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입안이 바짝 마른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칠판 앞에 서면 시공을 초월한 듯한 눈빛들이 일제히 쏟아진다. 어차피 이해 안 되니 얼른 끝났으면 한다는 열망이 역력하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수식을 꺼내들기 전 ‘자연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한다’는 비밀을 털어 놓으며 시작하는 건 어떨까 싶다.

회전운동에 나오는 식들은 그 형태가 선형운동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힘 대신 돌림힘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 질량 대신 관성 모멘트, 속도 대신 각속도. 기호만 다를 뿐 전체 구조가 판박이다. 에너지 식도, 운동량 식도, 일과 에너지 정리도 마찬가지다. 이 닮음은 우연도 아니고 교과서 편집자의 친절도 아니다. 자연이 실제로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자연은 대칭 구조 위에서 움직인다.

대칭성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쉽게 말해 “뭔가를 바꿔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상태”다. 서울에서 실험을 해도 파리에서 해도 물리 법칙은 똑같이 성립한다. 이것이 공간 이동에 대한 대칭성이다. 실험실을 동쪽으로 돌려놓아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방향에 대한 대칭성이다. 오늘 하든 내일 하든 결과가 같다면 시간에 대한 대칭성이다.

선형운동과 회전운동이 닮아 보이는 것은 둘 다 이 공간의 대칭성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각각 공간의 ‘이동 대칭’과 ‘회전 대칭’에서 태어난 쌍둥이인 셈이다.

그리고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 에미 뇌터는 이런 대칭성이 존재할 때마다 변하지 않는 양이 하나씩 따라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동 대칭에서는 선운동량이, 회전 대칭에서는 각운동량이, 시간 대칭에서는 에너지가 보존된다. 방정식이 닮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논리가 지금 한창 발전 중인 소셜 로봇, 즉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휴머노이드 인공지능(AI)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로봇이 사람의 감정을 읽으려면 얼굴 각도가 바뀌어도, 조명이 달라져도, 표정이 다소 흐릿해져도 그것을 같은 감정으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정면의 슬픈 얼굴과 옆모습의 슬픈 얼굴을 서로 다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제대로 된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패턴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AI가 학습하는 대칭성이다. 사람 얼굴 인식에 쓰이는 합성곱 신경망(CNN)이 이 이동·회전 대칭을 구조 안에 내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소셜 로봇에서 보존되어야 하는 양은 무엇일까? ‘정체성’이 바로 그 보존량이 아닐까? 로봇은 오늘과 내일 전혀 다른 존재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어제는 다정했는데 오늘은 냉담하고, 힘든 이야기를 꺼냈더니 맥락을 잊어버린다면 사람은 그 로봇을 신뢰하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어도 일정한 성격과 관계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소셜 로봇의 보존량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인간은 완벽하게 대칭적인 존재를 오히려 낯설어 한다. 언제나 같은 말투, 같은 표정, 같은 감정 강도로 반응한다면 그건 공감이 아니라 자동응답기다. 오히려 우리는 약간의 비대칭 속에서 ‘인간다움’을 느낀다. 잠시 망설이는 침묵,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 예상 밖의 농담 같은 것들 말이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대칭 깨짐(symmetry breaking)’이라고 부른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상태가 작은 차이 때문에 특정 방향을 선택하는 현상이다. 우주 구조의 형성부터 자석의 자기화까지,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현상 상당수가 이 대칭 깨짐에서 출발한다. 소셜 로봇의 개성과 감정 반응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균형 위에서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는다.

물리학 강의실과 로봇공학 연구실은 멀어 보이지만 그 밑에 흐르는 질문은 같다.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깨질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가?

생각해 보면 회전운동은 학생들에게 단지 낯선 공식 몇 개를 더 던져주는 단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자연이 얼마나 일관된 구조 위에서 움직이는지, 겉모습이 달라져도 얼마나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지가 숨어 있다. 학생들은 어쩌면 그것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렵지 않을 수 없다. 강의실에서 종종 마주치는 그 시공을 초월한 눈빛들이 너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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