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박덕배의 금융의 창] 새 총재 맞은 韓銀에 거는 기대

입력 2026-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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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시대 통화정책만으론 한계
경제흐름 넓은 시각으로 점검하고
일관된 메시지로 시장신뢰 다지길

최근 한국은행 총재가 교체되면서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새 총재 체제에서 기준금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그리고 그 변화가 금융시장과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가 기대해야 할 것은 단순한 금리 조정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새 한은총재 시대의 한국은행이 구조적 제약 속에서 통화정책의 신뢰와 실효성을 얼마나 회복할 수 있느냐이다.

새 시대의 한국은행이 마주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는 크게 좁아진 정책 공간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늘어난 가계부채는 금리를 단순한 경기조절 수단이 아니라 금융안정과 자산가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정책 변수로 바꾸어 놓았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상환 부담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금리를 내리면 자산시장 과열과 금융 불균형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미국과의 금리 차 확대가 원화 약세와 자본 이동 압력,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한국은행이 움직일 수 있는 정책 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 좁다.

둘째는 통화정책의 전달 경로가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점이다. 금리 변화는 금융시장과 자산가격에는 빠르게 반응하지만, 투자와 생산, 고용 등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높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중심의 신용 구조 속에서 통화정책의 효과가 금융 부문에서 상당 부분 흡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변화가 경제 전반에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다면 통화정책의 실효성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정책 환경 자체가 훨씬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물가와 성장 중심으로 판단하던 통화정책이 이제는 금융안정, 가계부채, 환율, 자본 이동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 여기에 재정정책이나 정책금융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개별 정책의 힘보다 정책 조합의 정합성이 훨씬 중요한 시대다.

이처럼 제약이 큰 환경일수록 한국은행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첫째,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신중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정책 운용이다. 시장은 금리 수준 자체보다 한국은행이 어떤 원칙과 판단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지를 더 민감하게 본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일수록 일관된 정책 메시지와 안정적인 시장 소통은 그 자체로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된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금리만큼 중요한 자산이다.

둘째, 통화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금리 변화가 금융시장에만 머물고 생산적 투자와 실물경제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다면 통화정책의 힘은 계속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자금조달 구조,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신용 흐름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책 조율 능력도 중요하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경제정책과 충돌하지 않는 일관된 정책 환경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혼자 경제를 움직일 수는 없지만, 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은행이 한국 경제의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성장 둔화, 생산성 저하, 인구구조 변화 같은 문제는 통화정책만으로 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며, 제한된 정책 수단 속에서도 통화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은 분명 한국은행의 몫이다.

금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놀라게 하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한국은행이다. 새 한은총재 시대에 거는 기대도 바로 그 지점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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