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강남 살겠다는 게 아닙니다"

입력 2026-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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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강남 살겠다고 했나요? 출퇴근 한 시간 걸려도 좋으니 서울에 내 몸 뉠 번듯한 내 집 한 채 있길 바란 건데, 이제 그 꿈마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만난 30대 직장인 A씨의 절규다. 강남 집값이 내려갔다는 뉴스가 도배되는 세상에서 정작 소외된 이들의 비명이기도 하다. 지표상으로는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KB부동산의 4월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은 0.29% 하락하며 2개월 연속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는 이를 규제의 승리라 읽겠지만, 통계 너머의 현장은 전혀 다른 공포에 휩싸여 있다.

어느 주말 취재차 들른 유료 부동산 강의장은 그야말로 '청년들의 전쟁터'였다. 수강생의 80% 이상을 차지한 2030 세대는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각자의 질문을 쏟아냈다. 자신의 월급과 자산 상황을 빼곡히 적은 수첩을 들고 "이 돈으로 '노도강'이라도 들어갈 수 있느냐"며 매달리는 모습은 흡사 생존 투쟁과 같았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강사 앞으로 긴 줄을 서서 개별 상담을 청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막연한 희망보다 당장 벼랑 끝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의 삶은 더욱 처절하다. 그는 이른바 재건축을 노린 '몸테크'를 선택해 낡은 아파트에서 거주 중이다. 중앙난방 시스템 탓에 조절할 수 없는 겨울날의 한기를 오로지 옷 몇 겹으로 견뎌내면서도 그는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이 추위를 버틴다"고 말했다. 주거의 안락함 대신 자산의 안정을 택한 청년들의 처절함은 시장의 가혹한 현실 앞에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금 이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집을 잡지 못하면 영영 서울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튕겨 나갈 것이라는 공포가 그들을 혹독한 환경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성을 잃은 '패닉 바잉'도 일상이 됐다. 대출 규제 선인 15억 원 이하 아파트가 밀집한 성북과 관악 등 서울 외곽 지역은 규제의 화살을 피해 가파르게 치솟았다. 관악구의 한 단지가 불과 몇 달 만에 9억 원대에서 11억 원대로 뛰는 것을 목도한 청년들에게 관망은 곧 낙오였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집도 안 보고 계약금부터 쐈다"는 위험천만한 무용담이 올라오고, 청년들은 도박하듯 전 재산을 베팅하고 있다.

결국, 고가 주택을 정조준한 정책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서울 변두리의 중저가 주택을 향했다. 15억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수요를 몰아넣으며 8~9억원대 서민 보루를 무너뜨린 셈이다.

"강남 집값 떨어지는데 내가 살 집은 없다"는 이들의 항변은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고 있다. 강남의 미세한 하락을 두고 시장 안정을 논하기엔 서울 외곽에서 집도 보지 못한 채 계약금을 입금하는 청춘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가파르고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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