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이 조금씩 강해지는 요즘, 패션 시장은 일찌감치 계절을 앞당겨 움직이는 중입니다.
이때 늘 떠오르는 질문도 있습니다. 다음 트렌드는 무엇이 될지, 또 누가 그 선두에 설지 궁금해지기 마련인데요. 무대 위에서도, 런웨이 앞줄에서도, 그리고 일상 속 스타일에서도 같은 이름이 반복되는 모습으로 그 답을 추측할 수 있죠.
그 중심에 선 인물은 제니입니다. 지난해 솔로 아티스트로서 뜨거웠던 이름은 올해 블랙핑크의 '완전체' 활동으로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요. 영향력은 본업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입은 옷부터 액세서리, 화장품에도 수많은 눈길이 따라붙곤 하죠.
이 관심은 단순한 화제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특정 제품이 '예뻐 보인다'는 반응을 넘어 실제 구매와 품절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공개 직후 검색량이 급증하고, 일부 제품은 재입고 일정까지 기다려야 할 만큼 빠르게 소진되는 사례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확인됩니다. 패션위크 현장에서부터 캠페인, 협업 컬렉션까지 제니의 선택이 곧 시즌의 키워드로 확장되는 모습인데요. 여름을 앞둔 지금, 그 영향력은 다시 한 번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름을 앞두고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얼굴'을 먼저 내세우는 전략입니다. 선글라스부터 스윔웨어까지, 여름이면 제철(?)을 맞는 각종 브랜드들이 제니를 '새 얼굴'로 발탁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죠.
먼저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 레이밴은 최근 제니를 공식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했습니다.
1937년 출발한 레이밴은 클래식 아이웨어의 상징으로 통하는 브랜드인데요. 최근에는 메타와 협업한 '레이밴 메타' 라인을 통해 스마트 안경 시장에도 출사표를 내밀었죠.
사실 제니와 레이밴의 컬래버레이션은 지난해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모델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브랜드를 대표해온 제니는 품절 대란을 일으키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보여줬는데요. 레이밴 관계자들이 제니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가 하면서 새로운 인연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어 지난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레이밴의 국내 첫 팝업 포토콜에 제니가 단독 참석하면서 레이밴과의 동행을 알렸죠.
제니는 이번 캠페인에서 레트로 무드부터 Y2K 감성까지 다양한 비주얼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선글라스와 웨어러블 기술을 동시에 아우르는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기성 세대에겐 '라이방'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레이밴은 제니와 손잡으면서 젊은 세대까지 새롭게 겨냥하겠다는 의지인데요. 그가 출연하는 세련된 캠페인 영상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스윔웨어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집니다. 제니는 미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프랭키스 비키니와 협업해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화제의 영상 속 비키니들도 해당 브랜드의 제품이었죠.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성장하며 Z세대 사이에서 '워너비 스윔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트렌디한 색감, 과감하면서도 세련된 컷아웃 디자인이 특징이죠.
이번 협업에서 제니는 단순 모델이 아니라 디자인과 기획 전반에 참여하며 '스윔 투 스트리트(swim-to-street)' 콘셉트를 내세웠습니다. 비키니를 넘어 니트, 드레스, 쇼츠 등 일상복과 결합된 라인업을 통해 여름 스타일의 활용도를 확장해 제시한 겁니다.
제니의 영향력은 '화제성'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아쉽습니다.
당장 최근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26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아티스트 부문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한국인으로선 유일합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유명 영화감독 J.J. 에이브럼스의 딸인 그레이시 에이브럼스는 타임지에 제니를 소개하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스타"라며 "그의 중심에는 마법이 있다. 화면을 통해서나 10만명이 모인 스타디움, 파티나 백스테이지 복도에서 볼 때도 똑같이 당신을 끌어당긴다"고 전했죠.
숫자를 보더라도 압도적인데요. 2021년 캘빈 클라인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된 그는 2023년 이너웨어 세트, 드레스, 캐주얼 웨어 등으로 구성된 리미티드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완판됐죠. 마케팅 분석 기업 런치매트릭스에 따르면 이 컬렉션은 당시 860만 달러(약 127억원) 상당의 미디어 영향력 가치(MIV)를 창출했습니다. MIV는 브랜드 언급, 게시물, SNS 상호작용 등을 화폐 가치로 환산한 수치입니다.
분석 플랫폼 레프티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미국 최대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서 제니는 가장 높은 미디어 가치(EMV)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폭발적인 에너지로 '젠첼라(Jennie+Coachella)'라는 수식어까지 얻은 그는 1300만달러, 한화로 192억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죠. 레프티는 제니를 두고 "올해 코첼라에서 유일하게 1000만달러 미디어 가치를 돌파한 아티스트"라고 부연했습니다.
실로 코첼라 이후 '라이크 제니(Like Jiennie)'가 빌보드 차트에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X(옛 트위터) 글로벌 트렌드 차트에 제니, 또 그에 관련된 단어가 속출했습니다. 패션은 말할 것도 없죠. 당시 제니가 뮈글러와 아크네 스튜디오 제품을 활용하면서 각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치솟았습니다.
2017년부터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샤넬도 제니로 함박웃음을 짓곤 합니다. 런치메트릭스에 따르면 2025 봄/여름(S/S) 쿠튀르 기간 샤넬은 전년 대비 MIV가 2배 이상 뛰어 5110만달러를 기록, 오랜 선두주자였던 디올을 뛰어넘었는데요. 여기엔 '제니 효과'가 주효했습니다. 당시 제니는 혼자서만 1340만달러가량의 MIV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2023년엔 제니의 SNS 게시물 1건이 만들어내는 광고 효과가 210만달러, 한화로 28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블랙핑크 활동은 물론 솔로 아티스트로 굳건한 입지를 다진 지금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인 SNS 콘텐츠가 브랜드 캠페인과 버금가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셈이죠.

제니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건 단순히 제품을 착용하고 노출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성과 결과물에 직접 손길을 뻗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포르쉐는 제니와 협업으로 탄생한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포 제니 루비 제인'을 공개한 바 있는데요. 제니의 꿈, 아이디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제작된 모델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스타일 포르쉐의 그랜트 라슨(Grant Larson) 프로젝트 매니저는 "제니는 창의적 교류에 익숙하다. 첫 미팅 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각화한 무드 보드까지 준비해 놀라게 했다"고 밝혔죠. 제니는 구름을 시각화한 디자인에 대해 "전 세계 투어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저에게 하늘과 구름은 무엇보다 소중한 여행 동반자이자 특별한 경험의 상징"이라며 "평소 구름과 하늘에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고 자연적 모티브를 사진에 담는 데 열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헤드폰 브랜드 비츠는 제니의 첫 번째 정규 '루비(Ruby)'에서 영감을 받아 빨간색을 바탕으로 'Ruby'와 제니(JENNIE)를 의미하는 알파벳 'R'과 'J'를 새기는가 하면, 리본 디테일을 더해 제니의 키치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텀블러 브랜드 스탠리도 같은 앨범에서 영감을 받아 자개장 무늬를 더한 디자인을 선보였는데요. 평소 제니가 애정하는 동물인 카피바라 키링까지 포인트로 제시했죠. 이번 프랭키스 비키니 캡슐 컬렉션에서 제니는 디자인 기획과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해 발매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단순히 브랜드의 이미지를 입히는 게 아니라 제니 개인의 취향과 아이덴티티를 제품에, 또 브랜드에 녹여내는 구조로 협업이 확장되고 있는데요. 결과물 역시 하나의 상품을 넘어 '제니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험으로 소비되는 중입니다.
이는 곧 브랜드 입장에서도 분명한 변화입니다. 일방적으로 모델의 이미지를 빌려 쓰는 대신, 아티스트의 감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제니는 그 중심에서 브랜드의 메시지와 디자인 언어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기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모델과 크리에이터의 경계를 허물며, 브랜드와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진화한 셈입니다. 여름을 앞두고 제니의 손을 잡은 브랜드들 역시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할지 여부도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