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 주장하며 개발·보전 충돌
전수조사 통해 정책틀 다시 짜기를

농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법과 편법이 결합된 농지 소유와 이용, 그리고 농지가격 상승이 투기로 이어지면서 사회·경제적 왜곡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농지는 식량 생산의 기반이자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농업 기반은 물론 국가 경제의 건전성까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은 “농지 관리가 엉망이고 투기 대상이 되고 있다. 귀농·귀촌을 하려고 해도 땅값이 올라 터를 잡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치적 언급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역대 정부 역시 농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왔지만, 이해관계의 충돌과 복잡한 법·제도 구조 속에서 근본적 개혁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농지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지는 가장 첨예한 갈등의 대상이었다. 토지 소유는 곧 권력과 부의 문제였고, 사회 구조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농지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근간을 다루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제는 보다 냉정하고 근본적 시각에서 농지 문제를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크게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농지 소유와 이용을 둘러싼 법적·제도적 문제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기반한 농지개혁은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소작농이 자작농으로 전환되면서 봉건적 지주제가 해체되었고, 이는 농업 생산성 향상과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예외 규정이 확대되고 농지 소유 규제가 완화되면서 제도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9년 농지 소유 상한 폐지는 농지 시장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급격히 증가했고, 불법 임대차와 투기적 보유가 만연하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경자유전 원칙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지금의 핵심 과제는 무너진 원칙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소유와 이용을 일치시키는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둘째, 경제·사회 환경 변화와 농지에 대한 모순된 인식 문제다.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농지의 주택, 도로, 산업단지 등 공익 목적을 위한 개발은 불가피했다. 그 과정에서 농지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2005년 182만 ha에 이르던 농지가 20년이 지난 2025년에는 약 150만 ha 수준으로 빠르게 감소했다. 농업 인구의 고령화 역시 심각한 문제다. 65세 이상 고령화된 농가 인구가 전체의 56%(2024년)에 달한다. 고령 농가 증가 등 다양한 이유로 비경작자의 보유비율이 40~50%에 이르며, 이대로라면 휴경농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또, 농민, 농사, 농지의 개념도 변해왔고 논란도 많다. 현행 ‘농지법’상 농지는 지목이 전·답, 과수원인 토지는 물론, 실제로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다년생 식물을 재배하는 모든 토지로 폭넓게 정의한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농지에 대한 인식이 이중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식량 안보를 위해 농지를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개발과 개인 이익을 위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내 땅은 개발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이러한 모순은 정책의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결국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 규제를 강화하면 반발이 커지고, 규제를 완화하면 투기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기에 더해 농지법, 국토계획법, 환경 관련 법령 등 여러 규제가 중첩되면서 정책 집행이 어렵다.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지점마다 정책은 흔들렸고, 그 틈을 투기 세력이 파고들었다.
셋째, 가장 심각한 것은 현장 행정의 집행력 저하다. 그동안 수많은 위반 사례가 적발되었지만, 실질적인 처분은 미약했다. 최근 5년간 일부지역의 농지 이용 실태조사에서도 농지 처분명령을 받은 사람은 7722명, 대상 면적은 917ha였다. 형식적 경작, 위장 자경, 불법 임대차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돼 왔다. 관리 소홀의 문제를 넘어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누적되어 정책 신뢰가 떨어진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농지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 점검과 함께, 집행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전국 농지에 대해 전수조사를 추진한다. 사실상 처음이며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조치이다. 단순한 실태 파악에 그치지 말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명확한 정책 방향과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상속, 고령화 등 불가피한 사유로 문제 상황에 놓인 경우에는 현실적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조사 결과를 우리 농지 정책의 기본 틀을 다시 설계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적정 농지 규모를 설정하고, 이를 국토 이용 계획과 ‘농촌 공간 재구조화’에 연계하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농지은행의 기능을 대폭 확대하여, 공공이 농지를 매입·관리하고 이를 청년농과 전문농에게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쟁점이 되는 실경작 여부 확인은 드론, 항공사진,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농지 소유와 이용 정보를 조세정보와 투명하게 연계해야 한다. 농지 정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농지 투기를 차단하고, 부동산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으며,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것은 물론 미래 세대의 생존 기반을 지키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