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관련 손해배상 판결을 두고 채권시장에서는 투자자 보호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회사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투자자와 달리 기관투자자는 실질적인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번 판결로 기관도 손해배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평가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14-3민사부(채동수, 남양우, 홍성욱 부장판사)는 최근 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이 한화오션과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98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같은 날 서울고법은 교보증권·유안타증권, 중소기업중앙회·신협중앙회, 수협중앙회, 국민은행, 매트라이프 등 기관투자자가 제기한 동일한 성격의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이들에 대한 손해배상 금액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500억원에 이른다. 법조계는 여기에 지난해 국민연금이 대법원에서 최종 442억원 배상을 확정받은 유사 사건 등을 포함하면 총 배상금액 규모가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채 발행을 자문하는 투자은행(IB) 업계는 이번 판결을 두고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반응이다. 대형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동양 사태에서 보듯 회사채에 문제가 생기면 개인은 구제되더라도 기관은 전문 투자자라며 실질적으로 보상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판결은 기관투자가도 손해배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발행사의 신용등급 변동과 재무상태에 민감하게 연동되는 것은 회사채뿐 아니라 기업어음(CP), 메자닌 등 채권 시장 전반에서 이미 당연한 절차로 본다. 앞서 2023년 태영건설도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내려갔고, 워크아웃 신청 당일에야 신용평가사들이 등급을 CCC로 대폭 낮추면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바 있다. 증권사 채권사업 부장은 "투자자가 매수한 종목의 신용등급 변동이나 회계 이슈를 민감하게 보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기존에 시장이 느끼고 있던 신용 리스크에 법적 책임이 더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발행시장 실무를 맡는 주관사에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발행 과정에서 제공되는 재무정보와 신용평가의 적정성에 대한 책임이 이전보다 무겁게 인식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회사채 시장에서는 발행 이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기관투자가가 실질적인 배상을 받기 쉽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일단 발행이 끝나면 사실상 딜(거래)이 마무리됐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후 책임까지 더 신경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주관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확실히 커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앞으로는 발행 과정에서 제공된 재무정보나 신용평가의 적정성까지 더 엄격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도 자유롭지 않을 전망이다. 과대평가된 신용등급과 왜곡된 재무정보가 손해배상 판단의 전제가 된 만큼, 향후 등급 산정과 회계감사 과정에서 더 보수적인 태도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본부장은 "발행사 입장에서는 회사채 발행 과정 자체가 더 까다로워지고, 감사 단계부터 검증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다"며 "일부 기업은 회사채 발행 자체가 더 까다로워지고 조달 비용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에서는 회계 투명성이 낮거나 과거 회계 이슈가 있었던 기업의 경우, 앞으로 회사채 발행 시 추가적인 금리 프리미엄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투자자들이 단순한 신용위험뿐 아니라 향후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가격에 반영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 커버리지부서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발행사와 주관사 쪽에서는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며 "회계 리스크가 있는 기업일수록 시장에서 더 높은 금리를 요구받거나 수요예측에서 보수적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중장기적으로는 채권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함께 나온다. 이전보다 책임 범위가 분명해진 만큼, 발행사와 주관사 등이 재무정보와 신용등급의 적정성을 더 엄격히 점검하게 되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발행 실무 부담이 커질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정보의 신뢰성과 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