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사들 요청 물량 절반만 공급
비닐·포장재 업체들 기계 멈추고 가동률 축소
정부, 종량제 봉투 조달 규제 완화·납품단가 조정 착수

중동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공급 불안이 확대되면서 비닐·포장재 등 플라스틱 가공품 생산 차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도 조달청 계약단가 조정에 나서는 등 수급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긴급 대응에 착수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포장재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1일 석유화학 업체들로부터 합성수지 공급 단가를 전월 대비 t(톤)당 60만원, 약 30~50% 인상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톤당 157만원 수준이던 원료 가격은 한 달 만에 230만원을 넘어섰다. 이번이 세 번째 가격 인상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3월에도 이란 사태를 이유로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3월 1일 출하분부터 t당 10만원, 15일 출하분부터 t당 20만원이 각각 인상됐다. 가격만 오른 것이 아니다. 공급 물량도 줄면서 재고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프라스틱협회 관계자는 “나프타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워 석화사들이 요청 물량의 절반 정도만 공급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는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등 생활필수품의 핵심 원료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국내 나프타 수요의 약 4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77%가 중동산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플라스틱 가공품 업체들은 비용 인상 직격탄을 맞았다.
수도권의 한 화학공업사 관계자는 “마진은커녕 생산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며 “종량제 봉투 생산 비중이 크지 않아 아예 중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장용기 성형업체에 플라스틱 시트를 납품하는 업체 관계자도 “3월에 이미 기계 한 대를 멈췄고, 지금은 조업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동률을 더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재료 가격 인상과 수급 차질이 겹치면서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포장재 업체들의 경영난도 심화하고 있다.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플라스틱 가공업체는 약 2만 곳, 종사자는 24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90%가 20인 이하 영세 사업자다.
원재료 가격 급등분은 납품단가에 즉시 반영되기 쉽지 않다. 에틸렌과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제품은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원재료 가격이 크게 움직이지만 납품단가는 기존 계약에 묶여 있어 중소 납품업체들이 손실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식품 용기와 포장재, 비닐봉지는 물론 종량제 봉투 사재기 등 불안이 커지자 정부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경쟁 절차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품질 검수 기간도 단축하기로 했다.
납품 단가 문제 해소에도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2일 사회적 대화기구 2차 회의를 열고 유통 대기업들이 중동 사태로 급등한 원재료 가격을 플라스틱 제품 납품단가에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다만 조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플라스틱 제조 업체들의 경영난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일단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며 “납품단가 반영 수준 등 구체적 안이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