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 거부에 동맹 압박 수위 고조
주한미군 거론하며 ‘안보 대가’ 요구 노골화
통상 조사 병행…경제·안보 연계 압박 확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곧바로 대응하지 않았던 한국에 대해 직접적으로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중동 ‘해상안보’를 넘어 한미 동맹의 성격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안보와 무역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오찬 행사에서 “이란이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관리를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직접 하도록 하겠다”면서 파병 요청에 호응하지 않았던 유럽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까지 직접 거론하며 “(그들은)도움이 되지 않았다(Not helpful)”고 말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로 얘기하다가 “유럽 국가가 하게 두자. 한국이 하게 두자”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험지에, 그것도 핵 무력 바로 옆에 4만5000명의 미군을 두고 있음에도”라고 덧붙였다.
‘핵 무력’은 북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음에도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등에는 한국 정부가 협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무엇보다 현재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수준을 4만5000명으로 부풀린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의 기여를 과대포장하면서 상대의 비협조를 부각하는 트럼프 특유의 화법으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ㆍ영국ㆍ프랑스 등 5개국을 직접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이 잇달아 파병 불가 의견이 내놨다. 우리 정부도 신중한 외교적 언어를 앞세워 직접 대응을 피했다. 결국 파병 요청 사흘 만인 같은 달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부터 도움은 필요 없었다. 일본과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분노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공식 석상에서 한국을 콕 집어 거론하며 불만을 표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파병 요청을 곧바로 수용하지 않은 한국을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처럼 한반도 안보와 통상 문제 등을 지렛대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 전쟁을 벌이면서도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한국과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을 조사 중이다. 과잉 생산 및 생산역량, 강제노동에 의한 생산품 수입 등을 문제 삼는 방식이다. 이밖에 미국 현지 투자에 나선 우리 기업에 대한 별도의 규제도 우려해야 할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압박에 서방 주요국도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여기에도 한국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런던 다우닝가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주 안에 유럽, 걸프지역 국가를 포함한 35개국이 참여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방안을 논의하는 외무장관 회의를 주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35개국에는 한국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BC 방송은 이 회의가 2일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주목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한미 간 긴밀한 소통 하에 신중히 검토하여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향후 중동 정세와 관련국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우리 국민 보호와 에너지 수송로 안전 확보를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역 관련해서는 상황이 너무 유동적이고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이 복합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취할 조치를 현 시점에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면서 “정부는 사태를 예단하지 않고 예의주시하면서 비상의 각오를 갖고 관련된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처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