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쇼크→무역 적자→원화 약세…韓 제조업 ‘복합 위기’ [K-경제, 복합 쇼크의 역습]

입력 2026-03-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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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100달러 돌파…제조업 전반 ‘복합 위기’ 확산
유가 10% 오르면 수입 2.68% 늘고 제조업 원가 0.68% 상승
중동 의존 70% 이상 품목 41개…공급망 리스크도 동시 압박

▲이란 국기 앞에 주가 그래프와 오일 펌프잭 모형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국기 앞에 주가 그래프와 오일 펌프잭 모형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국제유가 급등이 한국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무역수지 악화와 원화 약세, 제조업 원가 상승, 공급망 불안이 한꺼번에 겹치는 ‘복합 쇼크’가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9일 산업계와 주요 연구기관 분석을 종합하면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마비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는 에너지 수입 단가 상승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이는 다시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원유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구조상 유가 급등은 단순한 비용 변수에 그치지 않고 환율과 물가, 성장률, 산업 공급망을 동시에 흔드는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자 원·달러 환율은 1500원 가까이 치솟았고 코스피 지수는 한때 5200선 아래로 폭락했다.

문제는 유가 급등이 한국의 대외 수지와 제조업 채산성을 동시에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는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수출은 0.39% 감소하고 수입은 2.68%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산업 원가는 0.38% 오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제조업(0.68%)은 원재료와 물류, 전력, 연료 비용이 동시에 반영되면서 충격이 훨씬 크다.

시장에서는 원유 흐름이 회복되지 않으면 유가가 이달 말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르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p)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2.9%p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상수지는 767억달러(약 113조9600억원) 줄어든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원유 의존도가 유난히 높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경제 원유의존도는 5.63배럴/GDP만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지만 원유 소비량은 7위에 이르는 구조여서 국제유가 상승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공급망 리스크가 겹친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동 비중은 3% 정도지만 수출기업 수는 1만4000여 개사로 전체 수출기업 수의 14%에 달한다. 에너지 이슈 등 수입에서 직간접 영향도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중동 및 인근 국가 수입의존도가 70% 이상인 즉각관리 대상 수입품목은 41개다. 사우디산 원유, 튀르키예산 니켈 매트와 정련동, 이스라엘산 요오드 등이다.

니켈 매트는 이차전지 소재의 중간재로 쓰이고 정련동은 전력기기와 전장, 산업기계 전반에 투입된다. 요오드는 반도체와 정밀화학, 의약품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인다. 해상 운송 차질과 공급국 수출 제약이 겹치면 공급망 병목이 단숨에 현실화할 수 있다.

이번 충격은 유가 상승 자체보다 ‘유가→무역적자→원화 약세→수입물가 상승→제조업 원가 압박’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가 더 본질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망 취약성이 높은 품목군에서는 같은 충격이 더 오래, 더 크게 남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이번 충격이 장기화하면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이 굳어지면서 해외시장 수요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우리 수출 경기가 크게 하강할 우려가 존재한다”고 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유가가 급등할 경우 수출가격 경쟁력 약화 및 해외수요 둔화로 수출 감소,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및 국내 소비여력 축소로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원유와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 대체 수입선 확대, 핵심 품목 조기경보 체계 강화, 산업별 비상조달 계획을 동시에 가동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동 리스크는 단일 블록 리스크라기보다는 특정 국가 집중 리스크 성격이 강하다”며 “정책 대응도 ‘중동 전체’가 아닌 국가별 집중 관리 체계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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