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에서 휠체어로 외출 자체가 어려웠던 그는 그나마 탈 수 있었던 교통수단인 기차에 푹 빠졌다. 4살 때부터 온갖 철도 노선과 역명을 줄줄 외웠다. 하지만 낯선 서울 지하철을 타는 건 두려웠다. 그런 그에게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무의의 서울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는 서울에 자주 오지는 않지만 서울에 갈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단다.
그랬던 청년이 무의가 만든 서울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의 후속 프로젝트인 ‘모두의 지하철’ 교통약자 안내표지 디자인 연구 현장조사를 위해 휠체어 이용자를 모집할 때 거의 가장 먼저 신청한 건 당연했다. 홍대 디자이너 연구원들과 그는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서울역에서 어느 지점이 휠체어 이용자 길찾기에 헷갈리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당초 예상했던 2시간을 훌쩍 넘겨 4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도 ‘철도덕후’ 청년은 지칠 줄 몰랐다.
그와 이야기하던 중 귀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청년의 세상이 넓어지자 그는 고향을 떠나 평택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서는 걱정이 많았지만 청년은 처음으로 하는 학교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접근가능한 교통수단은 장애 청년과 그 가족의 삶을 확장하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줬다. 그후 지하철 노선이 복잡한 서울에서 만들어진 ‘교통약자환승지도’를 청년이 발견한 건 누군가가 이 복잡한 서울지하철을 휠체어를 타고 처음 오더라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는 신뢰와 포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신뢰’라는 키워드는 ‘모두의 지하철’ 표지를 연구하기 위해 만난 다른 교통약자들의 인터뷰에서도 종종 등장했다. 유아차를 끄는 아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유아차를 갖고 외출하자 지하철에서 꽁꽁 숨은 엘리베이터를 찾아다니며 길찾기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런 그에게 ‘모두의 지하철’ 사업을 통해 시청역 엘리베이터 벽면에 크게 붙여 놓은 휠체어 유모차 표지는 ‘찾아갈 수 있다’는 신뢰를, 지하철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다는 세상의 확장을 의미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사회의 신뢰 수준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 요소라고 했다. 개인간뿐 아니라 개인과 국가 간의 신뢰도 포함되어 있다. 청년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모두의 지하철 표지판 부착을 무의가 여러 기관, 특히 공공기관을 설득하여 진행한다는 게 자신에겐 의미가 있단다(무의의 이 사업은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현대로템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이 휠체어 탄 청년에게, 유아차를 끄는 엄마에게 엘리베이터에 붙은 큼지막한 휠체어 유아차 픽토그램은 길찾기에 대한 스스로의 능력 신뢰를 강화하는 기능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동약자들이 투명인간이 아니라 눈에 띄도록 가시화한다는 신뢰, 공공이 나를 인식하고 있다는 신뢰까지 강화하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