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은 늘 위기 이후에만 중요해진다. 통계 구조가 분명하게 이를 설명해주고 보여준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00년 30.9%에서 2020년 19.3%까지 떨어졌다. 소비하는 곡물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세계 평균 곡물 자급률이 100%를 웃도는 상황에서, 한국의 최근 3년 평균 곡물 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문다.
쌀 자급률은 90%대이지만, 밀·콩·옥수수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가깝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곡물 가격이 급등하자 이 구조는 곧바로 ‘국가 위험’으로 해석됐다. 그제야 식량안보, 자급률 목표, 전략작물 육성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는 곡물 자급 기반이 이미 크게 약화된 뒤에야 등장한 전형적인 사후 대응의 시간표다. 평상시에는 농업 예산과 보호 정책이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이라는 이유로 제한되다가, 위기가 닥치면 뒤늦게 안보 논리가 호출되는 이중적 태도다.
농가 소득 통계에서도 비슷한 역설이 반복된다. 2023년 농가 평균 소득은 5000만 원을 넘어섰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농업 외 소득과 이전소득의 비중이 크다.
농산물 판매로 얻는 소득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고, 가격 변동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는 그대로다. 과거 농가 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을 웃돌던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그 격차는 수십 년간 누적돼 왔다.
기후위기는 이 불균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지난 100년간 한국의 평균기온은 약 1.5도 상승했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농업 소득이 헥타르당 수백만 원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로 인한 재해와 생산 불안은 농가의 수입 감소와 자산 가치 하락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이 기후 비용은 국가의 안보 비용으로 분산되지 않고, 대부분 농민의 장부 위에 사적 위험으로 남는다. 결국 농민은 식량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계산서에서는 늘 마지막에 남는다. 평상시에는 비용과 비효율의 대상이 되고, 위기가 오면 안보를 책임지는 주체로 호명되는 모순된 위치다. 농업을 지탱하는 위험은 민간에 맡기고, 성과와 안도감은 사회가 소비하는 구조가 굳어져 왔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농업을 위기 때만 호출되는 산업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평상시에도 국가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인정할 것인가. 가격 변동과 기후위기, 시장 불안을 농민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둘 것인지, 사회가 함께 분담할 공공의 위험으로 전환할 것인지의 선택이다.
농업이 늘 위기 이후에만 주목받는 사회는 사실상 다음 위기를 준비하지 않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안보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 구조를 평상시에 만들지 않는다면, 농업은 또다시 위기 속에서만 불려 나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