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빠르게 '디지털화'를 추진 중인 일본 사회가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나섰다. 교육당국과 주요 언론을 중심으로 손 글씨가 사라질 때 불거질 수 있는 맹점을 진단하는 한편, 다양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1일 일본 문부과학성과 마이니치신문의 최근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일본 사회는 손 글씨가 사라지면서 직면한 '생각의 변화'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 교육현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과 성인 모두에서 손 글씨 사용 빈도가 뚜렷하게 감소했다. 구체적인 변곡점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짚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 사회는 빠르게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있다.
회사에서의 일정 관리와 회의록 등이 전자문서로 대체되는 한편, 학교의 과제 출제와 학생의 과제 제출 모두 디지털화로 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사라진 불편함 뒤에 따라온 변화다. 전문가들은 손 글씨를 단순한 기록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글자를 손으로 쓰는 동안 뇌에서는 운동 영역과 시각 처리 영역ㆍ언어 영역ㆍ기억 회로가 동시에 작동한다.
먼저 생각을 떠올리고 단어를 고른 다음, 손의 움직임으로 글씨를 완성한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글씨로 이어지는 이런 과정 자체가 하나의 복합적인 사고 훈련이다.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어떤 형태로 남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정형화된 활자보다 나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 결과물(글씨)은 생각의 완성도를 높인다. 활자로 남느냐 손 글씨로 남느냐에 따라 사고의 구조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마이니치신문은 의료계 신경과 전문의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디지털화에 따라 편리함은 늘었다. 그러나 쓰지 않는 근육이 퇴보하는 것처럼 뇌의 일부 기능도 사용 빈도에 따라 약해진다”고 분석했다. 뒤이어 "손 글씨는 느린 입력 방식이 아니다. 사고의 속도를 조절하고 정리하는 장치"라고 규정했다.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이 소개한 교사들의 공통된 관찰에 따르면 타이핑에 익숙한 학생일수록 아이디어는 빠르게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은 문장을 끝까지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흘러가고 있으나 그것을 붙잡아 구조화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과정이 삭제되면 생각을 정리하는 ‘완충 구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실제로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와 UCLA 공동연구진은 대학생 65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듣고 필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노트북으로 타이핑한 그룹과 손 글씨로 필기한 그룹을 비교한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강의 내용을 손으로 적은 학생들의 이해도와 시험 성취도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필기 내용을 다시 복습한 뒤 재시험을 치러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강의 내용을 그대로 입력하는 타이핑 형태의 필기는 개념 이해를 깊게 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현상은 학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인 역시 '장기기억 형성'이나 집중력 유지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키보드 입력은 상대적으로 빠르다. 그러나 여러 유사연구 결과를 보면 정보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회의 내용을 디지털로 기록했음에도 핵심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이니치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기를 버리자는 게 아니다"라며 "모든 기록과 사고 과정을 디지털 화면에 맡기면 '인간의 인지 구조'가 한 방향으로만 최적화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대안으로 손으로 일기를 써보는 것, 회의 전 아이디어를 종이에 정리하는 것도 제시됐다. 손 글씨로의 완전한 회귀가 아니라 최소한 '단절'을 피하자고 마이니치는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