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누구를 위한 ‘주 4.5일제’ 도입인가

입력 2026-0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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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일자리연대집행위원장

보조금 사실상 대기업·공기업으로
실효성 없고 박탈감만 심화시킬 뿐
유연근로 강화해 경쟁력 확보 시급

고용노동부의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로드맵’ 이행점검단이 최근 발표한 정부 보조금 지원 정책을 보면 ‘누구를 위한 주 4.5일제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점검단은 2024년 1859시간이던 국내 연평균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08시간)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잡고 이를 위한 이행 수단으로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 도입 기업에 노동자 1인당 연간 최대 720만 원 지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임금을 줄이지 않고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곳은 시장지배력이 강한 대기업과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 정도일 텐데 이런 기업에 정부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근로시간 단축을 유도한다는 것은 명분과 실효성이 떨어진다.

기업이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설비를 교체하거나 인력을 더 뽑아야 가능하다. 임금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할 정도의 기업이라면 정부지원이 필요없을 정도로 경영상태도 양호할 것이다. 실제로 실적이 좋은 금융사들의 노사는 지난해 10월 금요일 1시간 단축근무 시행과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보조금 지원을 통해 4.5일제 도입을 유도한다는 것은 별다른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로, 현실을 모르는 책상머리정책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지불능력이 없어 4.5일제 도입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 혜택을 보는 부자 노동자와의 계층 간 양극화는 물론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낄 것이다.

가뜩이나 대·중소기업 간에 임금 등 근로조건 격차가 큰 상황에서 주 4.5일제 도입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뿐이다. 점검단이 OECD평균치를 도달 목표로 삼은 것도 문제다. OECD평균치 언저리에 도달하면 우리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것인지, 국제무대에서 근로환경에 대한 위상이 올라간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유가 또 있는지도 궁금하다. OECD평균치를 목표로 삼는다면 파트타임 근로자의 비중을 늘리고 대기업들의 근로시간 단축을 유도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삶의 질 향상을 정책 우선순위에 둔다면 우리나라 장시간 근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영업자와 중소영세기업 근로자에 대한 근로시간 개선대책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3.5%로 일본(9.6%), 프랑스(13.1%), 미국(6.6%), 독일(8.7%)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주 60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비중은 14.5%로 상용근로자(1.9%), 임시근로자(1.8%)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자영업자 비중을 줄이거나 이들의 근로시간을 줄이면 전체 근로시간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주 4.5일제보다 주 52시간 유연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향상이 시급하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다투는 일본 미국 중국 대만 등 경쟁국들은 근로시간 유연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2019년 도입한 ‘일하는 방식 개혁’법제를 대대적으로 손볼 태세다. 일감이 넘쳐도 연장근로 한도를 우리보다 두 배 많은 월 100시간, 연 720시간으로 제한했던 것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 기업의 성장동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개혁 이전엔 노사가 합의할 경우 연장근로가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됐는데 이런 방향으로 법을 되돌려놓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근로시간 유연화에 집착하는 것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노동생산성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일본에는 연평균 근로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제조업이 많다. 그런데 일본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정치권은노동생산성 수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워라밸 타령을 하며 근로시간 단축만을 주장한다.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53.3달러로 미국(97.7달러), 독일(96.5달러)의 절반을 조금 넘으며 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33위)에 머물러 있다. 일본(56.8달러)에 비해서도 낮다.

주 4.5일제 도입 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제 우리나라도 근로시간 단축만 고집할 게 아니라 노동생산성 제고와 기업경쟁력을 감안해 노동유연성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데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기업의 비용 부담 증가와 경쟁력 약화, 사회양극화 등 많은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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