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전하진 칼럼] 저무는 성장시대, ‘살림셀’이 대안이다

입력 2026-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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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성장지향, 기후위기 불러
생태계 공생추구로 윤리기반 다져
자립 가능한 문명 대전환 끌어내야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도체 대형주 주가는 1년 만에 수백 퍼센트 올랐다. 뉴스는 연일 활황을 외친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풍요로워진 느낌이 없다. 집값은 여전히 높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숫자는 성장하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돌아오지 않는 시대,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살고 있다.

증시의 활황은 소수 종목이 만들어낸 결과다. 지수 상승분의 절반 이상이 반도체 2~3개 종목에 집중돼 있다. 나머지 기업들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자본은 꾸준히 쌓이는데 이익은 줄어드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더 많이 투자하는데 더 적게 버는 역설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 상장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 좀비기업이 12~20%에 달한다고 한다. 성장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빚으로 외형을 키운 결과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분별한 성장 자체가 기후위기, 양극화, 일자리 소멸의 구조적 원인이라는 점이다.

생명체는 특정 조건에 도달하면 외형적 성장을 멈춘다.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羽化)하듯 질적 성숙과 세대교체라는 건강한 전이가 이루어진다. 이 제어 장치가 고장 나 끝없는 양적 팽창이 지속되면 결국 암세포처럼 숙주를 파괴한다. 오늘날 인류 문명이 정확히 이와 같은 상태다. 국내총생산(GDP)은 많아지지만 생태계는 파괴되고, 기업 규모는 확대되지만 공동체는 해체된다. 성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장을 멈출 로직이 없다. 지배, 성장, 경쟁의 머니로직하에서는 환경 비용을 내재화하거나 장기 리스크에 대비하는 행동은 단기 이익을 줄이는 ‘비합리적 선택’이 된다. 외부의 강제 없이는 스스로 멈출 동기가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로 끝이 절벽인데도 속도를 높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의 위기 상황은 성장통이었다. 그때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더 넓은 성장의 공간이 열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후위기는 자연을 파괴하고, 양극화와 기술혁신은 일자리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성장통이 아니다. 암세포가 숙주를 파괴하는 병리증상이다. 이제 기존의 머니로직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대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명령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지금까지는 방향 없이 달려도 성장은 가능했다. 하지만 명확한 지향점이 없으면 성숙한 전환은 불가능하다.

ESGG(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는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구적 선을 추구한다’는 인류 공통의 지향점이다. 전 세계가 이러한 지향점을 명확하게 해야 미래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방향이 명확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또한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방향을 향한 실천 언어가 바로 ‘살림’이다. 살림의 반대는 죽임이다. 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대립이 새로운 윤리적 판단 기준이 된다. 이러한 윤리를 바탕으로 지구생태계와의 공생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이 바로 ‘살림, 풍요, 윤리’의 살림로직이다. 특히 살림은 타자와 우리를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우리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지구촌의 모든 국가와 시민들은 지구를 우리 안에 품지 않으면 안된다. 지구생태계와의 공생을 통해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문명적 우화(羽化)’가 이루어져야 한다.

로직의 대전환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쇄술, 증기기관, PC와 스마트폰 등 언제나 일상 속 작은 단위에서의 혁신이 거대한 문명의 변화를 주도해 왔다. 그런데 지금의 위기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의 혁신이 도구와 기술을 바꿔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성장을 멈추고 생태계와 공생하기 위해 세상을 작동시키는 ‘로직’ 자체를 바꿀 혁신 단위가 필요하다.

살림셀(Salim Cell)은 바로 그 로직을 이끌어갈 혁신의 단위다. 이웃과 함께 자립기반을 스스로 만들고 잉여자원을 인근 살림셀과 교환하는 형태의 유기체와 같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성장사회가 공장과 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성숙사회는 이런 살림셀과 윤리적 가치와 의미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삶의 단위가 바뀌면 문명이 바뀐다.

이러한 살림셀 모델을 우리 삶 속에 실증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 그것이 새로운 문명을 여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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