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라는 이름의 계급 [읽다 보니, 경제]

입력 2026-0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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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교보문고)
(사진제공=교보문고)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많은 희곡 속 사건이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서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품 속에서 주요 배경이 되는 공간은 다양하다. 집주인의 취향과 경제적 여유가 드러나는 부유한 주택, 저렴한 체류 비용 덕분에 한 달 살기가 가능한 해외 단독주택, 오랜 시간 가꿨지만 결국 비워야 하는 전셋집, 회사를 그만두고 전 재산을 들여 연 작은 책방까지 등장한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의 삶의 조건과 선택을 설명하는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공간은 인물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가늠하는 지표다. 동시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무엇을 감당해왔는지를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간을 둘러싼 갈등은 서로 다른 삶의 기준이 충돌하는 순간이며 타인의 공간에 들어선다는 행위는 기존의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건으로 작동한다.

'안녕'이라는 인사말의 의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20대 초중반부터 40대까지 인생의 다음 단계를 앞두고 있거나 여전히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다.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의 생계를 돕거나, 집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를 반복하고, 전세사기와 이혼 이후의 공백을 견디며 살아간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인공 은미는 40대 여성이다. 그는 과거 연인이었던 헌수와 함께 들었던 음악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들었던 음악 'Love Hurts'의 가사 "I'm young"을 은미가 한국어 '안녕'으로 잘못 알아듣는 장면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장치로 기능한다.

이후 두 사람은 이별하고 은미는 어머니를 오랜 기간 간병한 뒤 혼자 남는다. 사회생활까지 중단한 상태에서 경제적·정서적으로 고립된 은미에게 온라인 화상 영어 수업은 외부와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그는 '에이미(Amy)'라는 이름으로 수업에 참여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이어간다.

수업 중 만난 강사 로버트는 한국어 '안녕'이 인사와 작별 모두에 사용되는 이유를 묻는다. 이 질문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작품에서 '안녕'은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상대의 상태와 삶의 시간을 묻는 표현으로 확장된다.

이웃에서 비교 대상으로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한국 사회에서 주거와 자산을 둘러싼 구조적 불안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김애란은 주거 환경의 차이가 인간관계와 일상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서사 속에 담아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5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간 8.98%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남 등 이른바 '상급지'와 그 외 지역 간 격차가 고착화되면서 주거지는 개인의 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같은 해 하반기 전국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65.3%를 넘어섰다. 전세가 축소되며 월세가 주거의 주요 형태로 자리 잡았고 이에 따라 주거비 부담도 확대됐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21.2%에 달한다. 소득의 상당 부분이 주거비로 지출되는 구조 속에서 미래 계획은 장기적 목표가 아닌 단기적인 생계 유지에 머무르게 된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2년마다 보증금 인상과 이사 비용을 감당하며 거주지를 옮겨야 하고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와의 관계와 삶의 연속성은 쉽게 단절된다.

물리적 공간의 차이는 인간관계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웃은 더 이상 환대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산 가치와 비교되는 기준이 되고, 타인의 공간에 들어서는 행위는 이해의 확장이 아니라 판단과 경계의 출발점으로 작동한다.

타인의 공간에 들어선다는 것

작가는 책의 첫 장 '홈 파티'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집과 방이 자산과 숫자로 환산되는 현실 속에서 이 질문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관계가 형성되는 사회적 조건을 돌아보게 한다. 작품은 한국 사회에서 불안정한 삶이 일상화된 상황 속에서 만남과 이별, 환대와 경계가 어떤 구조 위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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