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누실’에서 다시 묻는 오늘의 삶

입력 2026-0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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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서예가ㆍ한국미협 캘리그라피 분과위원장

‘사시루실 유오덕형(斯是陋室,惟吾德馨).’(사진·이곳은 누추한 집이지만, 오직 나의 덕만은 향기롭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은 이 한 문장으로 오래 기억된다. ‘누실(陋室)’은 ‘누추한 집’을 가리키고, ‘명(銘)’은 비석 따위에 새기어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어구를 말한다.

정치적 부침 속에서 좌천을 거듭하던 그는 변방의 초라한 집에 머물며 이 짧은 산문시를 남겼다. 당시 누추한 집은 낮은 신분과 실패를 상징했지만, 유우석은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거처하는 ‘누실’을 통해 삶의 본질을 말하고자 했다. 집이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인격과 사유가 향기롭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넉넉지 않은 삶 속에서도 인간의 품격과 정신은 얼마든지 빛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집은 이제 삶의 그릇이 아니라 ‘자산’이 되었다. 결혼을 생각하면 먼저 집부터 떠올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주거 안정 여부를 계산한다. 집값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치솟았고,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청년층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주택 가격 상승과 반비례해 왔다는 통계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인구 감소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동네, 빈 교실이 늘어나는 학교,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산업 현장은 그 결과를 말해준다. 집은 더 이상 삶의 출발점이 아니라 장벽이 되었다.

유우석의 ‘누실명’은 가난을 미화하자는 글이 아니다. 다만 집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집이라 부르고, 무엇을 삶의 조건이라 여기고 있는가.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삶을 시작할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여기는 인식은 실로 자연스러운가.

물론 집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집이 삶의 목적이 되는 순간, 삶은 왜곡된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지 삶 그 자체가 아니다. 집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집이 가정을 낳고, 가정이 사회를 이룬다.

이 순서가 거꾸로 될 때 결혼과 출산은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인구 감소의 통계는 우리가 어떤 삶을 가치 있게 여겨왔는지에 대한 사회적 성적표다. 누실에서도 삶은 가능했지만, 집이 지나치게 비싸진 사회에서는 삶 자체가 미뤄진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낳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우석의 누추한 방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집이 커질수록 우리는 정말 더 잘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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