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선비들을 우리가 알던 모습과 전혀 다른 얼굴로 소개하는 책이다. 책 속의 선비들은 고리타분한 성리학자가 아니다. 토지는 어떻게 나누는 게 공정한지, 화폐가 부족할 때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부는 왜 특정 계층에 쏠리는지 같은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 경제 사상가들이다. 이지함은 직접 장사를 하며 경제를 몸으로 실험했고, 박제가는 해외 정보를 통해 조선의 다른 미래를 상상했으며, 정약용은 제도와 기술을 결합한 국가 운영의 설계도를 그렸다. 유수원은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앞서 간파했다. 이들의 고민은 서로 얽혀 조선판 ‘경제 유니버스’를 이루고, 책은 이를 쉽고 유쾌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조선을 치열하게 경제의 본질을 고민하던 시대로 다시 보게 된다.

베트남계 이민자이자 퀴어 작가 오션 브엉의 첫 소설이다. 이 작품은 개인의 성장담에 머무르지 않고 전쟁과 이민, 계급과 사랑이 교차하는 순간을 그려낸다. 소설에서 화자 리틀독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폭력과 사랑의 기억, 말해지지 못한 가족의 역사를 더듬는다. 베트남전쟁의 생존자인 할머니, 혼혈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어머니, 그리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아들의 삶은 파편처럼 이어지며 개인의 서사를 집단의 역사로 확장시킨다. 저자는 고통을 극복의 이야기로 정리하지 않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부서지는 존재들의 취약한 순간을 끝까지 응시한다. 시적 언어와 실험적인 서사는 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를 통해 말이 닿지 않는 관계 속에서도 쓰는 행위가 삶을 지속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한 서민 여성의 삶과 죽음의 궤적을 따라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이번 신작은 가족을 떠나 지식인이 된 아들이 평생 하층 계급에 머물렀던 어머니의 삶을 다시 불러내며 돌봄과 연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녀와 공장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지방 도시의 연금 생활자로 노년에 접어든 어머니의 삶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대와 계급의 조건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어머니의 삶은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우경화가 한 개인의 몸과 감정에 남긴 상처를 드러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연민이나 미화로 이야기를 정리하지 않는다. 이해의 불가능성을 끌어안은 채 타자에 관해 말하는 글쓰기의 위험과 필요를 함께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