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는 제도 내 혁신결합 앞서가
스테이블코인 도입 늦으면 낙오돼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해를 넘겼다. 지급결제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았지만, 발행 주체와 규제 방식, 중앙은행과 민간의 역할을 둘러싼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글로벌 흐름을 보면,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실험적 자산이 아니라 제도권 지급결제 인프라로 편입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제도 설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이 논쟁은 단일 사안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지금 진행 중인 핀테크와 테크핀 간 힘겨루기의 중심에 있다.
이 전쟁의 한 축은 핀테크(FinTech)다. 금융이 주체가 되고 기술은 수단이 된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기존 규제 틀 안에서 기술을 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금융 안정과 통제 가능성이 핵심 가치다. 다른 한 축은 테크핀(TechFin)이다. 플랫폼과 기술이 주체가 되고 금융은 기능으로 흡수된다. 결제와 송금, 신용 관리가 하나의 서비스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사용성과 확장성, 네트워크 효과가 우선 가치다. 같은 기술을 두고도 출발점과 지향점은 전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 논쟁이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핀테크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화폐 질서를 보완하는 지급결제 수단이다. 은행 중심의 발행 구조와 충분한 준비자산, 강한 규제가 전제된다. 반면 테크핀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결제 인프라다. 핵심은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어디에서 얼마나 편리하게 쓰이느냐다. 화폐에 가까운 것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논쟁이 수렴되는 이유다.
이처럼 지급결제를 둘러싼 논쟁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지급결제는 더 이상 단순한 금융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 접점과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가 결합된 핵심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과 플랫폼은 속도와 선점을 요구하는 반면, 법과 제도는 사고와 책임을 전제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 시간차가 존재하는 한, 쟁점은 바뀌어도 유사한 논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상황 역시 이 글로벌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지급결제 제도 정비가 논의됐지만, 여러 쟁점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겉으로는 세부 규정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핀테크와 테크핀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신과 성장을 중시하는 논리와, 금융 안정과 책임을 중시하는 논리가 정치권과 정부, 감독 당국 사이에서 분명히 갈려 있다.
이 같은 교착 상태가 길어질수록,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은 더 뚜렷한 대비로 다가온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민간 혁신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중국 역시 거대 플랫폼 기반의 지급결제 인프라 위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결합하는 선택을 했다. 해법은 다르지만, 지급결제를 전략 인프라로 인식하고 결정을 미루지 않는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문제는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급결제는 한 번 주도권을 내주면 되돌리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용자의 습관과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는 빠르게 고착된다. 특히 지급결제는 한 번 글로벌 표준과 이용 관행이 형성되면, 제도로 이를 뒤집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국내 대안이 정착되지 못할 경우,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구조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니라, 타협을 통한 속도다. 핀테크의 안정성과 테크핀의 확장성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는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총성 없는 전쟁에서 결론을 늦출수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점점 좁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