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제언] 기후담론 앞에 놓인 위기와 희망

입력 2025-12-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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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前 국립환경과학원장

송구영신의 시간이 되면 세상은 늘 두 개의 메시지 사이에 선다. 하나는 불안과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성찰과 희망이다. 지난 수년간 세상 담론을 지배해 온 것은 분명 전자였다. 기후 재앙, 인류의 종말, 그리고 번영 그 자체에 대한 죄책감이 반복적으로 주입됐다. 그러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정말 지금 이 자리는 그렇게 불안하고 암울한가?

역사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보여준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졌고, 더 오래 살며,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자원을 활용하며, 과학과 기술을 축적해 온 결과다. 인간은 자연의 일방적 파괴자가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을 관리하고 개선해 온 주체였기 때문이다.

‘성장은 곧 파괴’라는 인식 널리 퍼져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보편적 삶은 빈곤과 기근, 질병이었다.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기기 어려웠고, 흉작은 주기적으로 대규모 아사를 불러왔다. 오늘날 이 같은 현실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극복됐다. 세계 인구는 급증했지만, 식량 생산은 그보다 더 빠르게 늘어났다. 농업 기술의 발전, 비료의 개발, 화석연료의 활용, 기계화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에너지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과거 인류는 땔감 연기로 가득 찬 실내에서 추위와 질병을 견뎌야 했다.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가스와 전기를 통해 난방과 조리를 해결한다. 이는 단순히 생활의 편의를 넘어, 여성과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고 교육의 기회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문명적 전환이었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고수확 작물과 현대적 비료, 관개 기술은 한때 기근의 상징이던 지역을 식량 자립 국가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는 핵심 역할을 했다. 합성 질소 비료는 단순한 산업 제품이 아니라, 수십억 명의 생명을 살린 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환경과 기후 담론은 이러한 발전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인간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유해하며 성장은 곧 파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나갔다. 이러한 시각은 과학보다는 이념에 가깝고 사실보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담론이 가난한 국가들에 가장 큰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선진국이 이미 누린 에너지와 산업화 혜택을, 이제 막 발전을 시작한 국가들에는 허용하지 말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값비싸고 불안정한 에너지를 강요하면서 이를 ‘지구를 위한 희생’이란 도덕적 언어로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명확하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는 빈곤 탈출의 전제 조건이다. 불안정한 전력망으로는 산업도, 의료도, 교육도 유지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은 이념적 선언이 아니라 물질적 인프라 위에서 지켜진다.

데이터와 경험 기반한 냉정한 판단을

최근 들어 세계의 담론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동안 주입된 인류 번영에 대한 죄책감보다 에너지 안보와 가격, 산업 경쟁력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후퇴가 아니라 현실로의 복귀이자 미래로 가는 발전이다.

두려움보다 책임, 죄책감보다 이성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무한한 능력과 책임을 통해 번영은 가능해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를 앞세운 도덕적 압박이 아니라, 데이터와 경험에 기반한 냉정한 판단이다. 인류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한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환경을 위하고 지구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는 인류의 무한한 능력과 책임을 신뢰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회는 미래를 설계할 자격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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