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통제·최종사용자 규정…중국 생산기지 부담 커질 수도
‘미국이냐 중국이냐’ 아닌 고난도 균형 전략 시험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산 인공지능(AI) 수출 프로그램’ 참여 의사를 밝히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AI 공급망 재편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미국 주도의 AI 동맹에 핵심 파트너로 편입될 경우 수출 확대와 정책 지원이라는 분명한 실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중국 사업을 둘러싼 부담도 피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관보를 보면 최근 삼성전자와 SK는 미국 상무부가 추진하는 '미국산 AI 수출 프로그램'과 관련해 공식 의견을 제출했다. 미국 AI 수출 프로그램은 반도체·서버·가속기·클라우드·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기술 패키지를 미국 중심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할 경우 엔비디아, AMD 등 미국 빅테크 중심의 AI 생태계에서 두 회사의 반도체 채택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D램, 차세대 패키징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미국 AI 스택의 핵심 공급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는 국면에서 가장 확실한 성장 루트”로 본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주도하는 AI 플랫폼이 글로벌 표준으로 깔리면, 그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공급사는 사실상 정해져 있다”며 “미국 진영 참여는 단순한 외교 이슈가 아니라 중장기 매출과 직결된 선택”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정책 지원과 연방 자금 배정 가능성도 매력적인 요소다. 컨소시엄 참여 기업에는 수출 금융, 세제, 규제 완화 등 직·간접적인 혜택이 제공될 수 있어, 대규모 AI 투자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대 중인 삼성전자 텍사스 공장과 SK하이닉스의 현지 투자 계획과도 맞물린다.
반면 중국 사업을 둘러싼 부담은 분명한 약점이다. AI 수출 프로그램 참여 기업은 미국의 수출통제 체제와 최종사용자 규정, 대외 투자 제한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이는 중국 내 생산과 판매 전략에 직간접적인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시안 낸드 공장, SK하이닉스 우시 D램 공장 등 중국 내 핵심 생산기지를 운영 중인 상황에서 미중 기술 경쟁의 전면에 서는 셈이다.
중국 정부의 비공식적 압박 가능성도 변수다. 과거 반도체 장비 반입 지연, 인허가 절차 강화 등 사례를 감안하면, 미국 AI 동맹 참여가 중국 내 사업 환경을 더 불확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 쪽으로 명확히 분류될수록 중국에서는 ‘관리 대상’ 혹은 ‘리스크 기업’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익성과 별개로 경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정부 시절보다 중국과의 전면적 디커플링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은 완충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엔비디아 AI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등 ‘통제와 경쟁’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거처럼 일괄 차단보다는 협상 여지가 남아 있는 구조”라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AI 동맹 참여를 통해 성장 기회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중국 사업 리스크를 정교하게 관리해야 하는 고난도 전략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두 축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을 잡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며 “AI 시대 반도체 기업의 전략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