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일본 노동계는 왜 ‘정년 65세’ 고집하지 않았나

입력 2025-1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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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기업에 부담 가중 감안해 유연성 둬
양보 통한 노사상생⋯계속고용 선택
한국도 청년 고용 위해 결단 내려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년연장 문제는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중요한 이슈지만 이를 푸는 해법에는 차이가 많다. 무엇보다 양국 노동계의 접근방식부터 다르다. 지금 우리나라 양대노총은 고령자의 생산성 저하나 기업의 부담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법정 정년 65세’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야 60세 이전 받던 임금수준을 유지하면서 고용안정도 보장받을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정책을 쏟아내는 더불어민주당는 노동계가 제기한 요구안에 대해 약간의 손질을 통해 ‘법정 정년 65세’를 입법화할 태세다. 이렇게 되면 양대노총에 소속돼 있는 대기업,공기업 중심의 노조원들은 ‘법정 정년 65세’ 혜택을 받게 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무노조기업 근로자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정년 문제로 인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고령화시대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30년 넘게 고령자 고용연장 관련 제도를 만들고 정책시켜 왔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계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 일본은 1990년 ‘고연령자 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기업은 65세까지 계속 고용하도록 ‘노력’ 규정을 명시했고 2006년부터는 65세까지 고용의무화 조치를 명문화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계속 일할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고용방식은 정년 연장, 계속고용(퇴직후 재고용), 정년 폐지 등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획일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개별기업의 지불능력과 경영환경 등을 감안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최적의 방식을 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필자는 60세 이후 계속고용이 의무화되기 시작한 2006년도 일본의 기업, 노동단체, 정책연구기관 등을 방문해 계속고용방식에 대한 노사정의 반응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흥미로웠던 것은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렌고)은 임금이 줄어들 수 있는 계속고용 방식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을 계속 고용하는 것은 기업들로선 큰 부담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양대노총이 ‘법정 정년 65세’만을 고집하는 투쟁적 행태와는 달랐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계속고용의무화 조치 첫해인 2006년 3방식 중 ‘퇴직후 재고용’을 채택한 기업이 전체의 77.7%에 달할 만큼 퇴직후 재고용에 대한 노동계 거부감이 적었다. 기업 규모별로도 1000인 이상 대기업 중 81.9%가 퇴직후 재고용을 택했다. 이는 대기업도 60세 이상 고용에 부담을 느껴 대부분 재고용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치다.

노동계의 저항없이 계속고용제도가 정착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상생의 노사관계가 꼽힌다. 당시 만난 렌고 간부는 “노조가 3을 원하면 사용자에게 7을 양보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노사관계에 임하고 있다”며 “노사가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노동정책 이슈도 갈등없이 해결될수 있다”고 말했다. 양보를 모르고 제몫만 챙기겠다며 사사건건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의 노동단체와는 달랐다.

당시 재고용자들의 임금수준은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됐다. 절반 가까운 45.9%는 퇴직 전 임금의 60~80%를 지불했고 33.2%는 80~100% 수준이었다. 재고용기업 중 79.1%가 퇴직 전 임금의 60% 이상을 지불한 것이다. 40~60%를 지불한 기업도 20.3%에 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령자 계속고용제도가 정착됐고 지금도 재고용사업장 비율이 77%에 이르고 있다.

민간기업의 계속고용제가 정착되면서 60세인 공무원 정년을 2023년부터 매 2년 단위로 1년씩 늘려 2031년 65세로 연장키로 했다. 특이 점은 60세 이후의 공무원 급여는 퇴직 전 급여의 70%만 지급하도록 했지만 노동계 반발을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희망할 경우 70세까지 취업 기회도 확보할 수 있는 노력의무 규정을 법에 명시했다. 상생의 노동운동을 통해 계속고용제도가 성공하면서 일할 의욕이 있는 고령노동자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계가 ‘법정 정년 65세’를 고집하는 배경으로는 노동운동의 자주성,독립성 결여에서도 찾을수 있다. 노조전임자 임금, 사무실운영비 등을 노조비에서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정부나 사용자에게 손을 벌려온 의존적 행태 때문에 정년문제도 결국 기업의 부담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공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노조들도 노동운동의 독립성 차원에서라도 퇴직후 재고용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계속고용제도를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래야 청년고용과 이중구조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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