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 심해”…당국 경계감 고조

원ㆍ달러 환율이 8개월 만에 1480원을 돌파하며 고환율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환율 급등에 달러 환전 부담이 커지자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투자도 빠르게 식었고 미국 주식 순매수 결제 규모는 한 달 새 반토막 났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는 12월 한달 간(1~16일) 미국 주식을 약 20억 달러 순매수 결제했다. 이는 지난달 같은 기간(11월 1~16일) 순매수 결제액(36억3000만 달러)와 비교해 약 45% 감소한 규모다. 순매수 흐름은 유지되고 있지만 투자 강도는 눈에 띄게 약화됐다.
고환율이 미국 주식 투자에 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서학개미의 매수 속도를 직접적으로 제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환율은 장중 1482.3원까지 오르며 지난 4월 9일 이후 8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상승폭이 다소 줄었지만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2.8원 오른 1479.8원에 마감했다.
최근 환율 상승 속도는 가파르다. 11월 초 원ㆍ달러 환율은 1431원(11월 3일 기준)이었지만 12월 들어 1470원대를 넘어섰고 16일에는 1474.5원까지 상승했다. 한 달여 만에 환율이 40원 이상 오르면서 미국 주식 매수를 위한 달러 환전 부담이 커졌다.
환율 상승은 단순한 투자 심리 위축을 넘어 체감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달러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환율 상승으로 실제 투입되는 원화 규모가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률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주식 투자에 대한 관망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환율 국면에 대한 당국의 경계감도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환율 수준과 관련해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다”라며 금융 시스템 불안과는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는 순대외채권국이기 때문에 환율이 절하되면 이익을 보는 쪽도 있다”면서도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내부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는 환율이 단기간에 쉽게 내려오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은 정부의 안정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시장이 약한 국면에서는 환율의 가파른 상승 자체가 또 다른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과 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달러화 수요가 지속되며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11월 중순 일시 조정 이후 환율의 저점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연말 1450원 아래에서 마감할 수 있는지가 심리 전환의 핵심”이라며 “연말·연초에도 1450원 아래로 내려오지 못할 경우 한국은행이 고환율이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재검토해 향후 통화정책과 경제전망에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