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리스크 지려는 곳 없는 ‘150조 펀드’

입력 2025-1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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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자본시장2부장

정부가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구상을 내놨다. 정부 주도로 설정한 펀드로는 전례 없는 규모다. 지난해 국내 연간 벤처투자액이 약 27조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5배를 훌쩍 넘는다.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의 약 30%에 해당하는 자금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야심 차다. 하지만 절대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용의 묘’다.

국민성장펀드는 명목상 모험자본, 혹은 생산금융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출자 구조를 들여다보면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회사 자금의 비중이 크다. 모두 손실 위험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속성을 가진 조직이다. 정부와 금융회사 자금은 투자 성과가 부진할 경우 책임 문제가 곧바로 뒤따른다. 감사와 징계, 정치적·사법적 부담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투자 실패에 대한 면책을 주기도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운용 주체가 원금 보전과 회수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투자 규모가 클수록 손실 위험도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 공공이 회피하면 금융회사가 부담하고, 금융회사가 회피하면 민간 운용사나 투자 대상 기업의 몫으로 남는다. 정부와 금융권은 우선회수권이나 담보 등을 통해 각종 구조적 안전장치를 통해 위험 부담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과거 관제 펀드들의 전철을 밟으면 개인이든 투자를 받는 기업이든 경영자의 위험 부담이 커지는 구조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하는 길이 점차 좁아진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몇 년간 물적 분할 상장 규제, 유상증자에 대한 정책·시장 압박, 중복상장 논란, 사모펀드(PEF) 규제 등이 겹치며 투자금의 회수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2021년 21조 원을 웃돌던 기업공개(IPO) 공모액은 지난해 5조 원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주주 반발과 규제 리스크에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도 번번이 막혔다. 자본을 조달하는 데 장애가 많은 규제 환경에서 장기·고위험 투자를 감내할 투자자나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지분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출을 많이 늘리는 구조도 바람직하지 않다. 차입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난 국내 주요 기업의 특성상 대출을 통한 지원은 기업의 신용도 약화로 이어지고 다시 기업은 자금 조달 금리가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기업에 대한 저리 대출, 인프라 융자 등의 부작용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정책자금은 진짜로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일정 비율의 손실을 정부가 명시적으로 감내하는 구조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기업의 자기자본 조달을 가로막는 규제도 정비해야 한다. 물적 분할과 상장, 유상증자를 일률적으로 ‘악(惡)’으로 규정하는 접근은 성장 자본의 숨통을 끊는다. 모험자본의 출구도 넓혀야 한다. IPO, 인수합병(M&A), 전략적 지분 매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투자 이익을 실현하기 어렵다.

모험자본이 선순환하려면 돈보다 먼저 책임과 규제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가 과연 성장의 불씨를 살리는 모험자본으로 작동할지, 아니면 위험을 회피하는 또 하나의 관제 펀드로 남을지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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