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고 버텨 세계 축구 중심에 우뚝
스포트라이트 받자 “잘하자” 책임
그러나 이 모든 기록은 지 선수에겐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여자 축구선수에겐 축하와 응원의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먼저 찍히던 시절, 그는 오로지 실력으로만 답했다. 차별과 편견에 맞서 도전했다. 그리고 부던히 버텼고, 결국 세계 축구 무대의 한복판에 섰다. 한국 여자축구 역사에서 지소연은 늘 ‘첫 번째’였고, 그 자리는 외롭게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자리였다. 본지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K 퍼스트 우먼 : 한국 경제의 최초를 연 그녀들’ 시리즈에서 그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였다. 처음 그가 걸어간 길은 좁디 좁은 자갈길이었지만, 그가 꾹꾹 눌러 밟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이제는 제법 부드러운 길이 됐다. 무엇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여러 후배들과 함께 걸을 수 있게 됐다.

“후배들이 (남과)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소연(버밍엄시티 WFC·34) 선수는 최근 이투데이와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같은 문장을여러번 반복했다. 남다른 꿈으로 시작한 그의 축구 인생은 ‘여자가 왜 축구를 하느냐’는 질문과 맞서온 시간의 연속이었다.

지 선수가 축구를 시작했을 당시, 한국 여자축구는 존재 자체가 낯선 영역이었다. 그는 “그때는 여자가 축구를 해서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여자가 왜 축구를 하냐’는 시선이 먼저였다”고 돌아봤다.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묵묵히 지지해준 어머니가 있었다. 지 선수는 “어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걸 하게 해주셨고, 축구화나 각종 준비 용품을 사주며 제 선택을 존중해주셨다”고 말했다.
그에게 축구는 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뛰며 땀 흘리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성적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15살에 대표팀에 승선했고 첫 국제무대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부담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그 무게를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어릴 적만 해도 TV에서 여자 축구선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지 선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동경하는 선수로 여자 선수가 많이 꼽힌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 행동 하나하나가 후배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일찍 알았고,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오히려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소연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영국·미국 등 다양한 리그를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국내 최초로 잉글랜드 첼시에서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는 “처음 갔을 때는 클럽 환경이 지금처럼 좋은 수준은 아니었다”며 “‘이 클럽을 가장 강한 팀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언어 장벽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졌고 스스로 ‘큰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실력으로 자리를 잡고 이후에야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며 팀 안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악착같이 뛰어 만든 결실은 2015년 웸블리 FA컵 결승전이었다. 지소연은 결승 골을 터뜨리며 첼시FC 위민 역사상 첫 우승을 이끌었다. 그 순간은 그를 세계적인 선수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장면이 됐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한국 여자축구(WK리그)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 선수는 “선수 한 명, 한 명이 강해져야 대표팀도 강해진다”며 “WK리그에서 뛰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더 큰 세계를 경험하면 훨씬 다양한 걸 배우고 확실히 강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노출 부족'...팬 늘려야 시장 커져
후배들에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 전해

지소연이 꼽은 한국 여자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노출 부족’이다. 그는 “경기를 뛰어도 TV에 나오지 않으면 누가 어디서 뛰는지 모른다”며 “중계가 되고, 계속 화면에 비쳐야 팬도 늘고 스폰서도 붙고 시장도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유럽에서는 스카이스포츠, BBC 등 주요 채널을 통해 여자축구 경기가 라이브로 중계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오프라인 경기조차 평일 저녁 시간대에 편성되는 경우가 많아, 직장인들이 오고 싶어도 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한다.
한국 여자축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선수들의 경기 환경 역시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지 선수는 “제가 국내를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 훈련 시설이나 리그 운영, 유소년 시스템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축구연맹 회장도 바뀌고 연봉도 조금씩 오르는 등 작은 변화는 있지만, 아직도 인조잔디에서 훈련하는 팀이 있는 현실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지소연은 여자축구 리그 발전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선수들의 기본권과 생존을 위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공동회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선수협은 선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라며 “단순히 돈을 많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갖춰져야 할 기본적인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 선수의 최고 연봉은 10년 가까이 5000만 원에서 멈춰 있었다. 20년을 뛰어도 입단 3년 차 선수와 연봉이 같은 구조였다. 그는 “말이 안 된다.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 선수는 “기본 연봉 수준이 낮아서 여자 선수들은 프로 생활을 오래 해도 은퇴 이후를 준비하기가 정말 어렵다”며 “남자 선수들과는 은퇴 후 삶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건 잘못됐다’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고도 했다.
여자 선수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더 가혹한 시선을 마주할 때가 많다. 외모 평가나 성차별 역시 여전히 흔하다. 지 선수는 “이런 문제를 막아줄 보호 장치는 따로 없다”며 “분명히 시정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선수에게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또 다른 리스크도 존재한다. 해외에서는 이를 제도로 보장한다. 그는 “미국에서 뛸 때 24살부터 31살까지 다양한 나이에 임신한 선수들을 많이 봤고, 그중에는 국가대표 선수도 있었다”며 “미국은 임신 기간에 경기를 뛰지 않아도 연봉이 그대로 나오고, 그 기간만큼 계약 기간을 연장해주기 때문에 엄마가 되고 나서도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아직 그런 제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신·출산 이후에도 현역으로 뛰고 싶은 여자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높은 장벽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개선돼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여자 풋살과 생활체육 축구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고, 여기자 풋살리그가 생기는 등 스포츠 문화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다만 그는 이런 관심이 WK리그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지 선수는 “김연아, 김연경 같은 대스타가 여자축구에도 한 명쯤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저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이제는 제가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단기 목표는 38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다. 동시에 은퇴 이후의 인생 2막도 준비하고 있다. 요즘 지소연의 관심사는 제너럴 매니저(GM)다. 선수 영입과 감독 선임 등 구단의 방향을 설계하는 역할이다. 지도자 라이선스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남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여자팀에만 국한되지 않고 남자 팀도 가르치며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며 “남자축구에서 여자 지도자가 팀을 맡은 사례가 거의 없는데, 그 길을 열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축구계의 ‘퍼스트 우먼’이라는 수식어에 따른 부담을 묻자, 그는 “처음에는 부담이 있었지만 생각을 바꿨다”며 “이 또한 나라서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만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해졌다”고 담담히 답했다.
지 선수는 후배들에게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를 전하고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면 반드시 인정받는 순간이 와요. 꿈은 이뤄지는 게 아니라, 내가 이루는 거예요. 좋은 환경은 선배들이 만들 테니 후배들은 열심히 축구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