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보따리를 풀며 관세 리스크를 해소한 정부가 이달 중 예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비관세 장벽 협상 준비 체제에 본격 돌입했다.
농산물 검역 간소화부터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등 민감한 현안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예정이어서 정부의 협상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산업통상부는 1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관계부처 국장급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52차 통상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의 핵심은 연내 열리는 한미 FTA 공동위원회 대응 점검이다. 정부는 앞서 합의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JFS)를 바탕으로 자동차, 농산물, 디지털 등 비관세 분야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여한구 본부장은 "한미 관세협상은 마무리됐으나 비관세 이슈의 안정적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협조를 주문했다.
이번 한미 FTA 공동위원회는 ‘산 넘어 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관세 리스크 해소를 위해 한국 정부가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미국은 이를 발판 삼아 자국 기업에 유리하도록 한국의 규제 문턱을 낮추라는 전방위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대 격전지는 디지털 통상 분야다. 팩트시트에는 디지털 시장 접근성 확대와 데이터 이전 원활화 내용이 포함대 있는데, 이는 구글·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특히 국내에서는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으로 인해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온플법)’ 제정 목소리가 높지만, 미국은 이를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로 인식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입점 업체 갑질을 막는 ‘공정화법’을 우선 추진하고 독점 규제 논의는 속도를 조절하는 식의 절충안을 모색 중이나, 미국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요구와 망 사용료 문제까지 겹치며 디지털 주권을 둘러싼 양국의 줄다리기가 팽팽할 전망이다.
농산물 분야 역시 ‘화약고’다. 겉으로는 관세 철폐가 아니지만, 내용면에서는 시장 개방과 다를 바 없는 파급력을 지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위생 및 검역(SPS) 절차의 간소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사과, 배 등 미국산 과채류의 수입 승인 절차를 앞당기기 위한 ‘U.S. 데스크’ 설치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절차적 개선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농업계에서는 검역 절차가 간소화될 경우 병해충 유입 위험은 물론 국내 과수 농가의 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올해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한-영 FTA 개선 협상도 연내 타결을 목표로 속도를 내기로 했다.
또한 미국의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소송 동향과 유럽연합(EU)·캐나다의 철강 수입 규제, 멕시코의 관세 부과 예고 등 주요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됐다.
여 본부장은 “미국 외 주요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확대되고 통상환경의 가변성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