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건설투자가 5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건설 경기 침체가 경기순환이 아닌 구조적 저성장(L자형)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 주요 기관 모두 올해 건설투자 감소율을 –8~–9% 수준으로 제시하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 감소를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건설투자 성장률을 전년 대비 –8.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직전 전망보다 0.4%포인트 하향 조정된 수치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올해 건설투자는 약 264조 원으로 전년(-3.3%) 대비 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감소폭으로 보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3.2% 이후 최대다. 5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최초다. KDI도 연간 –9.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투자 위축은 업계 전반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신규 착공과 발주가 줄면서 시공사·설계사·감리 등 전방 산업 전반에서 수주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자금 조달이 어려운 민간 개발 사업의 중단과 지연이 늘며 PF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대한건설협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건설투자 금액 기준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는 2023년에 –16.6% 급감한 데 이어 2024년에도 5.3% 증가에 그치는 등 회복세가 미약했다. 올해 9월 누계 수주는 전년 대비 2.2% 증가했지만 공사비 상승이 반영된 명목 증가에 해당해 실질 수주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주체별로는 민간이 5.6% 늘어난 반면 공공은 –6.7% 감소했고, 공종별로는 토목(–28.4%) 급감과 건축(17.5%) 증가로 양극화가 심화됐다.

건설허가와 착공 면적 역시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며 건설 경기 전반의 위축을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9월까지 누적 기준 건축허가는 전년 대비 12.8% 감소했고, 건축착공 면적도 13.1%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024년 연간 수치 역시 최근 10년 평균과 비교해 약 77% 수준에 그치며 상당한 감소폭을 기록했다. 허가가 미실현 물량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착공은 실제 공사로 이어지는 실물 지표라는 측면에서 경기 위축의 심각성이 더 뚜렷하다는 평가다.
내년은 2% 내외 반등 전망이 나오나 올해 건설투자 급감에 따른 기저효과로 진단됐다. 특히 건설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 건설 경기의 회복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 반등 폭을 제한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저성장 장기화에 대비한 체질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철저한 선별 수주로 돌아선 상태다. 고수익 프로젝트 중심으로 수주 기조가 변화했고 신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모듈러 주택, 데이터센터, 해외 사업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업계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책 환경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정부 공사와 반도체 공장 등 일부 분야에서 회복이 가능해 보이지만 변수는 주택 시장”이라며 “지방은 미분양으로 공급이 어렵고 수도권도 대출 규제 강화로 분양이 쉽지 않아 건설사가 선뜻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규제를 유지한 채 공급 확대만 요구하면 수요가 뒤따르지 못해 경기 침체가 더 길어질 수 있다”며 “공공 발주 확대와 금융·정책 환경의 정상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 과징금 강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삼중고를 겪는 업계에 구체적인 예산이 투입돼야 실질적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공공 발주 확대와 함께 과도한 공급 규제 완화 등 구체적인 처방이 병행돼야 침체에 빠진 업계와 협력사의 회생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