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스토브리그를 휩쓸고 있는 그 이름. 리코. FA 시장도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 야구 커뮤니티에 올라온 ‘리코스포츠에이전시’죠. 그 이름만 들어도 논란의 방향을 짐작하게 하는데요. 팬 소통 앱 ‘스포디’가 언론 보도로 알려진 이후 그동안 묵혀 있던 불만과 의문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스포디는 8월부터 실제로 운영 중인 리코스포츠에이전시가 운영에 관여한 유료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앱)이었는데요. 리코와 계약한 선수들이 각자 계정을 만들고 팬이 월 4900원을 지불하면 일대일 메시지와 게시물을 볼 수 있는 구조죠. 아이돌 분야에서 활성화된 ‘버블’의 야구판 버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서비스가 운영된 기간은 거의 시즌과 겹쳤습니다.

선수 이름과 초상 사용은 구단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KBO 규약이 존재하는 만큼 이 부분이 구단의 강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는데요. 여러 구단은 “서비스 운영 사실 자체를 처음 들었다”고 밝혔고 활동 기간 중 상업적 이미지 사용은 규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KBO도 “퍼블리시티권 상업 사용에는 구단 사전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위반 판단을 내렸죠.
논란이 확산되자 리코 측은 25일 스포디 운영 중단과 전액 환불을 발표했는데요. 사과문에서 “검토와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허가 없는 운영’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남았죠. 이후 이예랑 리코스포츠에이전시 대표가 책임을 인정하며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지만 스토브리그 분위기는 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이어 고척스카이돔에서 예정된 ‘더 제너레이션 매치’ 준비 과정에 관한 의혹도 불거졌는데요. 행사는 베테랑과 유망주를 한자리에 모은다는 콘셉트로 관심을 얻었지만 정작 기획 단계에서 소속 구단과 협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밝혀진 거죠. 몇몇 구단은 “소집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말했고 응원가와 등장곡 사용 요청도 행사 직전에야 전달됐다는 주장도 나왔는데요.
이어 NC 다이노스 박건우·박민우 유료 팬미팅 공지를 구단이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았던 사례까지 거론되며 “구단을 파트너가 아닌 사후 통보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이 더 강해졌다.
리코가 이번 겨울 가장 무거운 여론의 중심에 선 결정적 계기는 에이전시·선수 매니지먼트소속 선수 김재환이었는데요. 김재환은 2008년 두산에 입단해 잠실을 대표하는 중심타자로 성장했고, 2018년 44홈런을 터뜨려 리그 MVP와 ‘잠실 홈런왕’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했습니다. 두산은 2021년 겨울, FA 자격을 앞둔 김재환에게 4년 총액 115억 원을 제시하며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약속했죠. 그런데 그 계약서에 포함된 한 조항이 시간이 흐른 뒤 결정적인 변수가 됐는데요. ‘마지막 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포기할 경우, 원소속 구단과 우선 협상을 진행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조건 없이 방출한다’는 내용이었죠.

올 시즌 김재환의 성적은 타율 0.241, 13홈런, 50타점으로 예년보다 하락했고 FA 시장에서 몸값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김재환은 FA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요. 팬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두산에 대한 의리로 FA를 포기한 것”이라는 해석도 돌았죠. 그러나 26일, 두산이 보류선수 명단에서 김재환을 제외하고 “4년 전 계약에 포함된 조항에 따라 우선 협상이 결렬돼 방출한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 조항이 적용되면서 김재환은 어떤 보상금이나 보상선수 부담도 없는 완전한 자유계약 신분이 됐는데요. 두산은 4년간 115억 원을 투자한 중심타자를 아무 대가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죠.
이번 사안을 두고 “FA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사례”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KBO 역시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조항을 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쪽이 김재환 측이었다는 점은 자연스럽게 리코의 이름을 다시 소환됐죠. 시즌과 스토브리그를 모두 아우르며 크고 작은 잡음이 이어진 덕분에 리코와 이예랑 대표는 다시 한번 야구계 겨울의 중심에 섰는데요.

이예랑 대표는 오랫동안 KBO에서 손꼽는 협상가로 평가받아 왔죠. 주요 FA 협상마다 그의 이름이 언급됐는데요. 하지만 뛰어난 협상력만큼이나 강한 여론 반발도 존재했습니다. 차명석 LG 트윈스 단장이 방송에서 김현수 협상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언급하며 간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일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죠.
하지만 “그래도 이예랑만큼 선수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챙겨주는 에이전트는 없다”는 선수들의 반응도 큰데요. 매년 겨울 FA 시즌, ‘비합리적인 계약’을 주도하는 다른 구단·다른 에이전시 사례가 터질 때마다 “그래도 리코는 일은 제대로 한다”며 역으로 재평가되는 상황도 반복됐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비단 리코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오죠. 시선을 조금 더 넓히면 살펴볼 수 있는 KBO의 에이전트 보유 제한 규정처럼요. 2018년 공식 대리인 제도가 도입될 때 KBO는 ‘특정 에이전트 독과점 방지’를 명분으로 한 명의 대리인이 한 팀당 3명, 전체 15명까지만 선수와 대리인 계약을 맺을 수 있게 제한했습니다. 표면적인 취지는 그럴듯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는데요.

제한은 ‘대리인 계약’에만 적용되고 선수들의 광고·용품 협찬·스케줄 관리 등을 맡는 ‘매니지먼트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에이전시는 자연스럽게 FA 협상이나 다년 계약이 필요한 일부 선수만 대리인 계약으로 신고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선수는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짠건데요. 매니지먼트 계약은 KBO에 신고할 의무도, KBO가 열람할 권한도 없습니다. 숫자만 보면 ‘팀당 3명·총 15명’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한 에이전시가 수십 명의 선수를 사실상 관리하고 필요할 때마다 대리인 계약으로 전환하는 식의 운용이 굳어졌습니다. 이 빈틈의 꼼수를 잘 이용한 셈이죠.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덩치가 큰 에이전시에게 유리합니다. 자본과 인력을 갖춘 회사일수록 더 많은 선수를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묶어둘 수 있고, 그 중 FA 자격을 얻거나 대형 계약이 필요한 선수들을 골라 대리인으로 나설 수 있는데요. 이예랑 대표는 2022년 이 보유 제한 규정이 부당하다며 KB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에이전트 독점 우려를 이유로 KBO의 손을 들어줬지만, 한 가지 해석은 리코에 유리하게 작동했습니다. FA 선수처럼 원소속 구단과 이미 계약이 끝난 선수는 보유 제한 규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판단이 내려진 거죠. 그 결과, 리코는 FA 시장에서 더 많은 선수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고 질적으로는 더 넓은 판을 쥐게 됐습니다.
속이 터지는 일이지만 구단을 마냥 ‘피해자’로만 볼 수도 없는데요. 두산이 김재환 계약서에 “FA 포기 후 협상 결렬 시 무조건 방출” 조항을 넣어준 것도, 실제보다 부풀려진 시장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금액을 맞춰온 것도 구단의 선택이었습니다.

겨울 야구판을 들끓게 한 논란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리코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데요. 다만 그 위에 KBO의 기형적인 규정과 구단들의 반복된 패닉바잉,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에이전트 시장 토양이 겹겹이 올라앉아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죠.
매년 같은 이름이 중심에 선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데요. 그 이름을 둘러싼 구조가 한 번도 제대로 손질된 적 없다는 뜻인 셈이죠. 또다시 이 반복의 책임에 대한 물음을 외면한다면, 다음 스토브리그에도 같은 이름을 불러야 할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