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연말, 극장가에 온기를 불어넣을 기대작들이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액션 영화부터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코미디, 게임으로 먼저 인기를 끈 공포영화까지 장르도 다양한데요.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장르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올해 극장가에서 강세를 보인 건 단연 애니메이션입니다. 탄탄한 팬덤을 거느린 일본 애니메이션이 잇따라 극장가를 찾으면서 기록도 새롭게 썼는데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급기야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1위까지 올랐죠. 애니메이션이 국내 극장가에서 한 해 최고 흥행작이 된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요. 일본 영화가 연말 집계에서 1위에 오른 것도 전례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디즈니의 대표 지식재산권(IP)까지 출격합니다. 애니메이션이 연말 극장가까지 꽉 잡을지 이목이 쏠리는데요. 일단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두 번째 시리즈로 돌아왔습니다. 오늘(26일) 개봉한 따끈따끈한 신작이죠.
'주토피아 2'는 동물들의 세상인 주토피아 시티 최초로 경찰관이 된 토끼 주디가 사기꾼 여우 닉과 함께 포식자 계층에 속하는 동물들이 연이어 실종되는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립니다. 2편에서 주디와 닉은 포유류들이 사는 도시를 발칵 뒤집어 놓은 미스터리한 파충류 게리를 쫓기 위해 새 구역에 잠입 수사를 나섭니다.
전작 '주토피아' 이후 9년 만에 베일을 벗은 속편인 만큼 팬들의 기대가 상당했는데요. 또 한 번 연출을 맡은 바이론 하워드 감독은 이번 신작을 두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영화"라고 밝히기도 했죠.
실로 동물 캐릭터부터 확장됐습니다. '주토피아 2'에는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는 최다 규모인 67종, 총 178마리의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특히 디즈니가 그간 한 번도 주인공으로 다루지 않은 파충류 캐릭터, 뱀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1편이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용기의 메시지를 전했다면 2편은 사건을 해결하는 주디와 닉, 그리고 존재를 증명하려는 게리의 여정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각자가 가진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담겼는데요.
여기에 많은 관객이 열광한 주디와 닉의 케미스트리도 더 강력해졌습니다. 전작 '주토피아'가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며 두 캐릭터가 서서히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주토피아 2'에서는 마침내 공식 파트너가 된 주디와 닉이 진정한 파트너십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여정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죠. 마지막 쿠키 영상까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전언입니다.
실로 이날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주토피아2'는 오후 4시 기준 실시간 예매율 65.3%의 압도적 수치로 전체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매 관객 수는 34만8065명으로 나타났죠.
뜨거운 관심은 일찍이 예고됐습니다. 22일 '주토피아 2'는 인기 뮤지컬 영화 '위키드: 포 굿'을 꺾고 전체 예매율 1위에 등극한 이후 줄곧 전체 예매율 1위를 차지해 왔는데요. 개봉 나흘 전 예매량을 보면 '인사이드 아웃2', '모아나2' 동시기 사전 예매량을 뛰어넘은 수치입니다. 참고로 '인사이드 아웃2'의 누적 관객 수는 879만 명, '모아나2'는 355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죠.

'주토피아 2' 시사회 직후 호평이 쏟아진 점도 기대를 더합니다. 시사회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먼저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는데요. 최근 한국 극장가에서 입소문은 하나의 '흥행 예고편'과도 같아 이목을 끌죠.
최근 관객의 영화 선택이 신중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객 성향 변화, 영화 관람 요금 상승 등이 주된 배경이었는데요. 영화제나 시상식 수상으로 작품성이 검증된 예술영화가 수십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거나, 영화 개봉 뒤 관객이 극장을 찾는 평균 관람 시간이 점차 길어지는 것도 입소문의 중요성이 공고해졌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2023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CJ CGV는 CGV 회원 관객의 소비 행태를 분석해 영화 소비 트렌드를 제시한 바 있는데요. 영화 관람 행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평균 관람 시점이었습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평균 관람 시점은 개봉 뒤 10.9일이었지만, 최근 1년간 15.1일로 4.3일 늘어난 겁니다. 이전보다 관람을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었다는 의미로, 입소문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개봉 첫 주 최대 관객 유입'에서 '개봉 2주차 이후 관객 확대'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특히 1020세대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죠. 당시 10대의 경우 6.3일, 20대는 4.7일 더 걸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입소문이 강한 작품의 공통점도 뚜렷합니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적 만족도 △콘셉트나 세계관의 매력 △재관람을 유도할 만큼의 재미 요소를 갖춘 콘텐츠 등인데요. '주토피아 2'는 여기에 폭넓은 관람층까지 자랑합니다. 가족 단위 관객부터 디즈니 팬덤, 1020 젊은 관객까지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다 보니, 한 번 긍정적인 반응이 터지면 입소문 확산 속도가 빠른 편이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주디 역의 배우 지니퍼 굿윈은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1편과 2편 중 고르라면 감히 말하건대 2편이 더 재밌다"고 장담한 바 있습니다.

극장가에서 애니메이션의 존재감이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한국 영화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고, 관객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만한 확실한 메인 타이틀이 부재한 상황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이 틈을 디즈니·픽사 등 글로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빠르게 채우고 있는 셈이죠.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관객의 소비 기준입니다. 가격 부담이 커진 만큼 관객은 실패 없는 선택을 더욱 선호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애니메이션 IP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습니다.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시각적 완성도와 스토리 품질에 대한 기대치가 형성돼 있다 보니 '어느 정도의 재미는 보장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퍼져 있는 겁니다.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연말 소비 심리도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부추깁니다.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으로 스트리밍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대형 화면으로 즐기는 애니메이션의 몰입감과 관람 만족도를 대체하긴 쉽지 않죠.
올해 한국 영화 기대작이었던 '어쩔수가없다' 등이 기대보다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면서 관객의 선택은 해외 영화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인데요. 특히 원작 만화로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일본 애니메이션이 입소문을 통해 대중까지 흡수,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다수 오른 상황입니다. 당장 다음 달에는 '극장판 주술회전: 시부야사변 X 사멸회유(이하 주술회전)'과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이하 짱구는 못말려)'가 개봉할 예정이죠.
관객이 찾는 건 리스크 없는 재미, 확실한 만족도, 그리고 극장에서만 가능한 체험이라는 게 증명된 상황. '주토피아 2'까지 흥행에 성공한다면 올해 극장가의 최강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갈리지 않을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