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에너지 올인은 자살행위⋯실용적 에너지 믹스 필요"
이재명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인공지능(AI) 초강국'과 '재생에너지 대전환'의 청사진은 화려하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의 이면에는 '전력 대란(블랙아웃) 우려'라는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예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AI와 데이터센터가 불러올 전력 수요 폭증을 향후 재생에너지가 중심이 될 전력 인프라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6일 전력거래소 등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전력 예비율(공급 예비율)은 15~18%대를 유지하며 외형상 '전력 부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가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향후 AI 전환 가속화로 전력 소비의 패러다임 자체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구글 검색 1회당 전력 소모량은 0.3Wh(와트시) 수준이지만, 챗GPT 등 생성형 AI 검색은 그 10배인 약 2.9Wh를 소모한다. 특히 학습 단계뿐만 아니라 서비스 구동 단계에서도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24시간 돌아가며 막대한 전력을 집어삼킨다.
정부는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만 732개에 달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전력 용량은 약 49GW(기가와트)로 추산된다. 이는 1GW급 원자력 발전소 50기, 혹은 500MW(메가와트)급 석탄화력발전소 100기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양이다. 현재의 예비율만 믿고 있다가는 3~4년 내에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전기를 만들어도 보낼 길이 없는 '전력망 병목' 현상이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고, 해당 생산 전력을 수월하게 이동시키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데이터센터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 반면, 대규모 발전 단지는 해안가에 편중돼 있다. 동해안의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전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선로 건설이 주민 반대와 지자체 인허가 지연으로 늦어지면서 가동률을 강제로 낮추는 '송전 제약' 사태를 이미 겪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송전망 건설 사업의 당초 계획 대비 준공 지연 기간은 평균 26개월에 달한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이기도 하지만, 1초라도 전력이 끊기면 안 되는 핵심 보안 시설이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로는 이 거대한 수요를 24시간 안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지방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려면 초고압직류송전(HVDC)과 같은 대용량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AI 육성'과 글로벌 트렌드인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현실을 무시한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보다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60기가 넘는 석탄발전소를 대안 없이 폐쇄하거나, 원전과 가스를 줄이고 재생에너지에 올인하는 것은 '산업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탄소중립 추세에는 맞추되 원자력을 기저 전력(32~33% 비중 유지)으로 삼고, 액화천연가스(LNG)를 보조 전력원으로 활용하며 석탄 발전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20%→10%)하는 '실용적 에너지 믹스'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전력 생산지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기업에 파격적인 전기요금 인하 혜택이나 세제 지원을 제공하는 '분산 에너지'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