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녹는 얼음 속에서 새로운 기회도 싹트고 있다. 바로 북극항로의 등장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해상 운송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수에즈 운하 대비 거리는 7000km, 시간은 10일 단축된다.
북동항로, 북서항로, 북극점 횡단항로 세 가지 노선 중 러시아 관할 북동항로가 현재 주축이다. 물동량은 2015년 540만 t에서 2024년 3790만 t으로 7배 폭증했으며, 2035년에는 1억5000만~2억3000만 t으로 3.9~6배 증가(KDB)할 전망이다. 경제성은 명확하다. 수에즈 대비 운항비용 28~33% 정도 절감된다. 하절기 3~4개월 운항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파나마·수에즈의 리스크(가뭄, 후티반군 공격)를 대체할 대안으로 떠오른다.
주요국들은 이 항로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을 에너지·산업 중심지로 육성하는 국가 전략 아래, 쇄빙선 45척(원자력 8척)을 보유하고 2035년까지 항만 개발과 상선 1600척 건조에 64억 달러를 투자한다.
중국은 ‘빙상실크로드’로 일대일로를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 야말 반도의 LNG 지분 20% 확보와 쇄빙선 5척 운영으로 2025년 중국~유럽 상업 운항을 시작한다. 미국은 과거 안보 중심에서 경제·기술 동맹으로 전환하여, ‘2024 북극전략(Arctic Strategy)’으로 쇄빙선 16척 추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강화에 90억 달러를 쏟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자원(원유, 희토류) 확보와 운송 안정성을 노리는 것이다. 올해 들어 미·러,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극항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며, 국제 정치·경제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비북극권 국가지만, 지리적 이점과 세계 최고 조선기술, 울산·여수 석유화학단지 연계를 강점으로 삼는다. 2013년 북극 기본계획부터 2018년 진흥계획, 2050년 극지비전까지 경제 중심으로 전환 중(KMI)이며,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와 차세대 선박(2029년 완성)을 활용한다. 현대글로비스·CJ대한통운의 시범 운항 사례처럼 업계 주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범정부 컨트롤타워 설치, 금융은 북극펀드 신설, 업계는 데이터 공유와 환경규제 준수를 제안(KDB)한다. 이는 중장기 계획으로 선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한 경제 기회로만 볼 수 있을까? 북극항로는 기후변화의 역설적 산물이다. 빙하가 녹아 항로가 열리지만 이는 생태계 파괴와 원주민 삶의 위기를 동반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가져야 할까? 우선,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극지해역 운항선박 국제기준’(IMO Polar Code)처럼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LNG 추진선 확대를 통해 오염을 최소화하는 ‘녹색 항로’ 철학이 필요하다.
둘째, 인류 공존의 관점에서 북극이사회(Arctic-Council) 협력을 강화하고, 자원 독점이 아닌 공유를 추구해야 한다. 셋째,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며, 개인적·국가적 탄소중립 노력을 가속하는 반성적 태도가 필수다. 북극의 녹는 얼음은 지구의 경고다. 이를 기회로 삼되, 자연과의 조화를 잃지 않는 지혜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