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 “목표보다 성실함이 먼저...여성 인재 양성, 국가 경쟁력의 핵심”[K 퍼스트 우먼⑨]

입력 2025-11-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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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11-18 18: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학계·정계·재계 거친 ‘여성 과학자’…AI인재·기후대응·여성인력 정책 당부

"위대함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어떤 사람이 위대한가. 사람들이 어째서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가. 무엇이 그를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을 그가 일생동안 변함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으며,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을 만나고 나니 문득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명언이 떠올랐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의 인생에 위대한 ‘명성’과 ‘권위’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김 이사장은 ”한번도 (여성) 최초가 되겠다거나,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만간 학회에서 발표 예정인 자신의 인생 발자취가 담긴 수십장의 PDF를 하나하나 보여주면서도, 그 성과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왕도가 없다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매일 매순간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여성 후배들에게 전하는 그의 조언은 대단치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끝까지 그의 조용한 목소리는 '현실에 대한 충실함'에 대한 당부로 귀결됐다. ※대담 :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평생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살아본 적이 없다. 어느 자리에서건 그 자리에서 항상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제 몫을 하려고 애썼다.”

지난달 15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카이스트) 서울 강남구 도곡동 캠퍼스 집무실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화려한 이력과 대조적인 소탈한 성격을 드러냈다. 그는 학계·정계·재계에서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여럿 보유했다. 특히 여성이 귀한 과학계에서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KOFST) 첫 여성 회장, 한국환경한림원(KAES) 첫 여성 이사장을 지냈다. 묵묵히 소임을 다한 결과 카이스트가 개교한 1971년 이래 ‘반백 년’만의 첫 여성 이사장이 됐다.

‘여자는 수학을 못 한다?’ 선입견 탈피해야…AI 패권경쟁 대비 주력

김 이사장은 여성이 드물었던 과학계에서 오래 고군분투한 원로 과학자다. 숙명여대, 명지대, 서울대, 카이스트에서 교육과 연구를 지속했다. 그는 “이공계에 여성이 드문 이유로 성별적 특질이 언급된 역사가 길다”라면서 “오랜 기간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인간’으로 대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학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편견만으로도 여학생의 수학 문제풀이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라며 선입견 배제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시절 내건 구호는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이었다”라며 “(성별과 관계없이) 감정 조절, 동기 부여, 공감, 협력 등 사회적 스킬이 성공적인 커리어에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이사장직에 오르면서는 ‘총장은 아버지 역할, 이사장인 나는 어머니 역할을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학교에서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팔을 걷어붙였다. 김 이사장은 특히 과학계 최대 화두인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힘썼다. 그는 교내 창업부터, AI 인재들의 미래 진로까지 세심한 고민을 털어놨다.

김 이사장은 “카이스트는 미국 뉴욕대(NYU)와 공동 AI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AI수학대학원프로그램을 신설해 수학을 잘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라며 “교내 스타트업을 성공시키는 데 가장 큰 관심이 있는데, KAIST는 국내 대학 중 창업기업 생존율이 가장 높다고 자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진 기술 강국과 경쟁하려면 갈 길이 멀다”라고 내다봤다. 김 이사장은 “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비율로 세계 2위 수준이지만, AI 전문인력의 규모는 세계 10위권 밖에 있다”라며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와 비교해 한국의 AI 연구자 초봉은 30%~50% 낮아 인재 순 유출이 심각하고, 고성능 연산 자원이 부족해 연구 환경도 열악하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김 이사장은 “한국의 AI 관련 인력 중 여성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매우 낮은 수준으로 파악된다”라며 “국내 AI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여성 연구자들의 취약성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환경부 최장수 장관 거쳐 대기업 의장까지…에너지·산업계 개편에 “정부 역할 절실”

‘환경부 최장 재임 여성 장관’은 김 이사장의 또 다른 명예다.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1999-2003)을 지냈다. 현재 전국 도심을 누비는 ‘천연가스 버스’는 김 이사장의 지휘하에 2002년 도입됐다. 매년 개최되는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를 처음 정착시킨 것도 김 이사장이다.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필두로 정부와 기업이 견고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조언이다. 한국은 환경 정책을 성공시키기 어려운 지정학적, 지경학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내에서는 ‘기후 규제’와 ‘에너지 진흥’의 이질적 정책 목표를 충돌 없이 동반 추구할 묘안이 필요하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가 재생에너지 확대 과도기에 받을 타격을 완충할 방안도 관건이다.

김 이사장은 “전임 환경부 장관답지 않은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과학자 출신으로 기업에서 환경문제를 목격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만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에너지 안보가 중시되는 ‘무역의 무기화’ 시대에는 기후정책과 에너지 전환도 경제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원자력은 자원 빈국인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역량을 갖췄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지,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기후위기 대응 목표와 에너지 전환은 제조업 중심 국가로서 경험 중인 에너지·자원 수급 불안정, 수출입 불균형, 산업 공동화 등의 위기를 고려해야 한다”라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이질성을 조속히 극복하고 산업계와 소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라고 독려했다.

기업들이 변화하는 국내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김 이사장은 대학, 입법부, 행정부를 두루 경험한 끝에 “기업이 가장 힘들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에너지 안보 위협이 큰 가운데 수출 주도의 경제구조라는 ‘악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다.

김 이사장은 “한국 경제는 대기업 집단의 비중이 크며 IMF 위기 이후 기업들이 핵심 사업에 선택적으로 집중해 왔다”라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미흡하고 조직문화가 폐쇄적인 특성도 취약점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내수 시장의 정체와 인건비 상승, 국제 경쟁 심화 등이 비용 부담을 가중해 신규 투자와 고용 확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특히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는데,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체계 구축이 난제다”라며 “환율, 금융시장, 규제 변화, 비즈니스 모델 전환 등 총체적 리스크 관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화학산업 등 전통산업 중심 기업들은 구조 개편 여력이 없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맞춤형 규제와 지원으로 기업을 살리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일벌레 기질, 체중 42kg까지 빠져”…여성 인재 활용, 여전히 아쉽다

김 이사장은 공공·민간 부문 모두 조직문화 혁신과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뛰어난 인재가 일·가정 양립에 실패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쟁력 강화도 요원하다. 김 이사장은 과거와 비교해 사회적 인식과 환경이 크게 개선됐지만, 여성들이 여전히 커리어와 가정 사이 양자택일의 기로를 맞닥뜨리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김 이사장은 70년대 육아 휴직 없이 세 자녀를 출산했으며, 믿을 건 오직 스스로의 ‘깡’뿐이었다고 웃어 보였다. 대학과 기업을 종횡무진했던 시절을 그는 “너무 바빠서 살찔 새도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62학번 여성이 마주한 유교 전통의 사회에서는 여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욕심내면, 그에 따르는 고생은 모두 불평 없이 스스로 감수해야 했다”라며 “일벌레 기질이 있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지내 한때 체중이 42kg까지 줄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옛날에 비하면 여성이 놓인 환경이 훨씬 좋아졌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다”라며 “여성 인력 활용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여성을 위한 진보는 모두를 위한 진보다(Progress for women is progress for all)”라는 국제연합(UN)의 슬로건을 명심할 것을 제언했다.

그는 “모성 보호와 고용 촉진 등 적극적인 전략 대책이 없다면, 앞으로 더욱 악화할 저출산과 인력 부족 난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산·학·연과 공공 부문이 협력해 다양한 분야의 여성 인력 롤모델과 성공 스토리를 발굴하고, 여성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온전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라고 내다봤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걸어온 길 (이투데이 그래픽팀=신미영 기자)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걸어온 길 (이투데이 그래픽팀=신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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