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박덕배의 금융의 창] ‘산업재편 기회’라 읽는 한미 관세협상

입력 2025-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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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평가연구원 비상근연구위원/금융의 창 대표

세부조항 미공개로 불확실성 남아
해외투자·국내산업 육성 병행하고
기술축적과 산업고도화 계기 삼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어렵게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은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하던 25%의 고율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고, 한국은 향후 10년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약 2000억 달러는 현금, 1500억 달러는 산업협력형 투자로 구성되며, 현금은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단계적으로 집행된다. 표면적으로는 ‘투자와 관세의 교환’이지만, 실제로는 양국이 서로의 전략적 목표를 맞바꾼 셈이다. 미국은 제조업 부흥의 자금을, 한국은 수출의 통로를 확보했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환율은 우려보다 안정세를 보였고, 수출 관련 업종 주가도 큰 폭으로 반등했다가 일부 조정을 받는 흐름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고, 현금 투자도 장기 분할 구조로 설계한 덕분이다. 단기 충격을 피하면서 정책 신뢰를 높였다는 점은 이번 협상의 주요 성과로 평가된다.

1500억 달러의 산업협력형 투자는 새로운 부담이라기보다, 한국이 이미 추진 중이던 산업전환 자금을 구조화한 성격이 강하다. 조선, 에너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은 본래 대규모 투입이 필요한 산업이었고, 이번 협상을 통해 그 자금을 미국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묶은 것은 외교적 거래이자 산업정책적 정렬이다.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산업 재편 자금을 제도권 협력으로 끌어올린 과정이다.

그러나 구조적 리스크는 남아 있다. 핵심 세부 조항이 비공개 상태이고 투자 시기, 산업별 배분, 수익 환류와 손실 처리 구조가 확정되지 않았다. 정치 일정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관세 혜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중심 전략을 전제로 한 합의인 만큼, 정권 교체 시 투자 구조가 흔들릴 여지도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남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이후의 협상’을 어떻게 주도하느냐다. 이번 합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세부 조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어떤 원칙과 논리로 움직이느냐가 향후 수십 년간의 산업 질서를 좌우할 것이다.

우선, 투자의 방향과 질을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산업협력형 투자는 단순히 미국 내 현지화 자금이 아니라, 국내 산업기술을 강화하고 기술이전이 가능한 구조로 바꿔야 한다. 2000억 달러 현금 투자도 환율 안정과 산업전환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단계별 집행, 환리스크 관리 체계를 포함해야 한다. 특히 해외투자가 국내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외투자와 국내 산업 육성을 병행하는 이중축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협상 구조에 정책적 지속성을 내장해야 한다. 정권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산업협력 프레임이 필요하다. 각 프로젝트에 법적 안정장치(termination clause), 수익 환류 구조, 환헤지 메커니즘을 명확히 포함시켜야 한다.

셋째, 이번 협상을 산업 재편의 모멘텀으로 활용해야 한다. 협력형 투자는 조선, 에너지, AI 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해 이미 필요한 투자다. 이를 미국과의 기술·인력 교류로 연결한다면, 단순한 대외 의무가 아니라 산업 고도화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했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국민이 신뢰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집행 로드맵이 필요하다. 투자금의 배분, 산업별 파트너, 수익 환류 구조를 제시하고, 중간 점검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정치적 합의에서 경제적 실행으로 넘어가는 순간, 진짜 협상력이 드러난다.

이번 합의는 단기적으로 외환시장을 안정시켰고, 중장기적으로 산업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관세가 낮아졌다고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타결의 선언이 아니라 세부 설계의 주도권이다. 세부 협상에서 산업 구조와 기술 축적의 관점을 반영하지 못하면, 이번 합의는 단기적 안도에 머물 것이다. 관세는 낮아졌지만,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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