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배운 사랑, 사회에 나눠주길” 라파엘 어린이학교 가보니

입력 2025-11-04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서울성모병원 소아혈액종양병동 속 ‘작은 학교’…경험·소통 방점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가 음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가 음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투병 중에도 아이들은 자라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입원해야 하는 소아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학업을 단념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는 환아들이 제 나이에 누려야 할 배움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도록 마련된 병원 속 작은 학교다. 환아들은 병원학교에서 출석을 인정받으며 교과·비교과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지난달 31일 본지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본관 20층 소아혈액종양병동에 위치한 라파엘 어린이학교에 방문해 음악수업을 참관하고 장정수 의료사회복지사와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를 만났다. 이들은 “아이들이 치료 중에도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장정수 사회복지사가 학생에게서 받은 풍선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장정수 사회복지사가 학생에게서 받은 풍선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소아혈액종양병동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구역이다. 병원 인솔자의 안내를 받아 감염 및 위생관리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병동 출입문을 통과하면 복잡한 병원 집기들이 늘어선 분주한 스테이션 맞은편으로 라파엘 어린이학교 교실이 있다. 교실 문을 열면 병동과는 180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학생들이 만든 점토 인형과 아기자기한 미술 작품들이 시원한 통창을 따라 전시돼 있다. 장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에게 병원 생활은 힘들고 답답할 수 있는데, 교실에서는 바깥 풍경도 보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꾸몄다”라고 말했다.

장 의료사회복지사와 아이들 간 소통의 흔적도 곳곳에 보였다. 사물함에 붙어있는 ‘의견함’에는 “6학년 문제 프린트해주세요”와 “소설, 시나리오 책 읽고 싶어요”등 학생들의 요청이 쓰여 있다. 장 의료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의 손글씨 밑으로 일일이 ‘네♡ 찾아볼게요’ 등의 애정 어린 답변을 달았다. 최근 퇴원한 학생이 남긴 풍선 편지도 장 사회복지사의 책상 한편에 놓여 있었다. 풍선에는 서툰 글씨로 ‘제가 다 나아도 기역해주세요’, ‘언재나 행복하게 해주세요 선생님들 고마웠어요’라는 인사가 적혔다.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가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음악 수업을 위해 시청각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가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음악 수업을 위해 시청각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이날 오후 2시에는 임 강사의 음악수업을 듣기 위해 6세 학생 1명과 보호자가 교실을 찾았다. 수업 주제는 ‘노래 개사’다. 임 강사가 도롱뇽 사진을 보여주며 동요 ‘도롱뇽(작곡 방시혁)’을 피아노로 연주하자 학생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임 강사가 ‘도’로 시작하는 단어를 묻자, 학생은 큰 목소리로 “도미노”라고 외쳤다. 곧 노래의 주인공은 도롱뇽에서 도미노로 바뀌었다. 율동까지 더해지자 수업의 분위기는 한껏 쾌활해졌다.

교실에 갖춰진 피아노와 터치벨 등도 학생의 흥미를 집중시켰다. 학생과 보호자가 함께 터치벨을 연주하며 동요에 따라 음계를 익히는 시간도 가졌다. 임 강사는 30분가량의 수업 내내 학생과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며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학생의 즉흥 요청에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주제곡도 감상했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은 아쉬워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소아혈액종양병동에 입원한 학생이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의 음악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소아혈액종양병동에 입원한 학생이 임유진 강사(음악치료사)의 음악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임 강사는 “장기간 입원을 하면 발달과업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특히 청소년기 아이들은 자신이 남들과 달리 아프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기기 쉽다”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 치료의 목표는 아이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지만, 병원학교 수업의 목표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도 모두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은 학생들과의 소통 수단이자 활력소라는 것이 임 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작곡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은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음악을 만들며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라며 “음악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소소한 일상도 공유하다 보면,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라고 강조했다.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장정수 사회복지사가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라파엘 어린이학교에서 장정수 사회복지사가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병원학교가 학생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지만, 운영 밑천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에게 적합한 양질의 수업을 개설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장 의료사회복지사는 “라파엘 어린이학교는 교육청 지원 예산 이외에도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지원, 서울성모병원 자체 예산 등으로 운영된다”라며 “특히 어린이학교에 다녔던 환아 보호자들의 기부금 덕분에 좋은 수업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데, 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들과 함께한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오랜 기부로 이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병원학교를 떠나서도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장 의료사회복지사의 목표다. 병원이라는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책임감을 함양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라파엘 어린이학교 수업이 학생들의 자발적 수강신청으로 진행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장 의료사회복지사는 “병원에서는 정해진 치료 일정이 우선이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라며 “수업을 스스로 선택해보고, 거기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도움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끼리 다툼이나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대화를 통해 화해하도록 유도하며 또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을 향한 바람을 묻자 장 의료사회복지사는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치료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병원에서 받은 사랑을 사회 곳곳에 확산해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라고 미소지었다.


대표이사
정의선, 이동석, 무뇨스 바르셀로 호세 안토니오(각자 대표이사)
이사구성
이사 12명 / 사외이사 7명
최근공시
[2025.12.01] 영업(잠정)실적(공정공시)
[2025.12.01] 자기주식처분결과보고서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환율 급등에 증권사 외환거래 실적 ‘와르르’
  • 조세호·박나래·조진웅, 하룻밤 새 터진 의혹들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7,378,000
    • -0.88%
    • 이더리움
    • 4,715,000
    • -1.19%
    • 비트코인 캐시
    • 858,000
    • -3%
    • 리플
    • 3,111
    • -4.13%
    • 솔라나
    • 206,800
    • -3.45%
    • 에이다
    • 654
    • -2.68%
    • 트론
    • 427
    • +2.64%
    • 스텔라루멘
    • 375
    • -1.06%
    • 비트코인에스브이
    • 31,000
    • -1.62%
    • 체인링크
    • 21,170
    • -2.17%
    • 샌드박스
    • 220
    • -3.5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