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AI시대의 과학 “더 정확히 질문하기”

입력 2025-10-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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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학기가 시작되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두었던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요즘은 매일 서너 권의 책을 이삼십 페이지씩 번갈아 읽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특히 나처럼 부지불식간에 손이 책에서 영상으로 옮겨가 버려 당혹스러운 사람이라면, 이 방식이 꽤 도움이 된다.

읽다 말기를 반복하다 마음먹고 다시 펼친 책 중에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의 과학 칼럼집이 있다. 아시모프는 과학자이자 소설가로, ‘로봇공학(robotics)’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그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흥미로워 보이는 글부터 읽으려 목차를 대충 훑어봤는데, ‘최초의 과학자는 누구인가?’ 제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짧지만 묘하게 긴장감이 있는 문장이었다.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정작 ‘과학자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득 ‘과학자’라는 말의 기원이 궁금해 찾아보니 이 단어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지금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로 칭해지는 뉴턴, 다윈, 패러데이 같은 사람들조차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 불렸다. 당시에는 ‘화학자(chemist)’나 ‘천문학자(astronomer)’처럼 분야별 명칭만이 존재했고, 자연 전체를 탐구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윌리엄 휘웰(William Whewell, 1794~1866)이 1833년 “예술가(artist)가 art를 다루듯, science를 다루는 사람도 scientist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이 말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학문이 귀족적 교양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ist’라는 접미어는 장인이나 기술자 같은 실무자의 느낌을 풍겼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 ‘실무자적’ 특성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과학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자연을 머릿속에서 사유하는 대신, 직접 실험하고 관찰하며 개념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탐구자들이 등장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다.

이런 점에서 아시모프가 ‘최초의 과학자’라는 질문에 마이클 패러데이를 꼽은 것은 꽤 설득력이 있는 선택이다. 패러데이는 정규 교육도 수학적 훈련도 거의 받지 못한 제본공 출신이었다. 그러나 “전류가 자석 근처의 도선을 통과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 하나에 답하기 위해 수천 번의 실험을 반복했고, 마침내 전자기 유도의 원리를 발견했다. 또한 자석 주위에 쇳가루를 뿌려 보이지 않던 힘의 패턴을 ‘보이게’ 했고, 그 과정에서 ‘힘은 공간에 분포한다’는 장(field)의 개념을 제시했다.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과학사학자 데이비드 구딩(David Gooding)의 평가처럼 패러데이는 “실험을 통해새로운 개념어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측정한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언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감각적 형태로 바꾼 첫 번째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각에서도 ‘최초의 과학자’는 여전히 패러데이일까? 패러데이가 보여준 태도 즉, 이론보다 실험을, 정답보다 과정을, 확신보다 호기심을 중시하는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이제 인공지능(AI)이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며, 심지어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시대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는 과학자들이 수십 년간 풀지 못했던 단백질 접힘 문제를 해결했다. AI는 놀라운 속도로, 그리고 상당히 정확하게 ‘답’을 낸다.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은 남는다. “무엇을 물을 것인가?”

패러데이의 시대에는 실험을 설계하고 질문을 던지는 주체가 인간이었고, 지금도 그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의 본질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은 다르겠지만, 과학이 결국 ‘물음에서 시작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패러데이는 “결과가 틀렸다면 실험을 고쳐야 하고, 결과가 맞다면 더 나은 질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다시 묻는 능력은 AI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그리고 상당 기간 인간만의 영역으로 남아있기를 희망한다).

아시모프가 패러데이를 ‘최초의 과학자’라 부른 이유는 그가 ‘지식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지식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발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AI가 과학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감각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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