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당일 일본 항로에서 귀국하던 선박 기관장이 바다 한가운데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부산 입항 직후 응급시술로 목숨을 구했다. 이번 사례는 해상 응급의료 대응의 한계를 드러내며, 의료관리자 제도의 실효성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온병원은 지난 6일 오후 1만톤급 컨테이너선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기관장 A씨(68)가 귀항 직후 병원으로 이송돼 급성심근경색 진단 후 긴급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받고 회복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항해 중 속쓰림과 소화불량 증상을 느꼈으나 단순 위장병으로 생각해 선내 상비약을 복용했다. 위성 화상전화를 통한 119 원격진료도 가능했지만,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해 버텼다. 그러나 부산항 도착 직전 심한 가슴 통증과 식은땀,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면서 곧바로 응급센터로 옮겨졌다.
온병원 심혈관센터 이현국 교수팀은 두 개의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응급 중재술을 시행, 혈전을 제거하고 스텐트를 삽입했다. 시술 중 혈류가 멈추는 '무혈류 현상'까지 겹쳤으나 신속한 처치로 정상 혈류를 회복했다. 이틀간 집중치료를 받은 A씨는 일주일 만에 회복해 지난 13일 퇴원했다.
A씨는 "추석이라 참았다가 항구에 도착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의료진이 지체 없이 움직여 살 수 있었다"며 "이번 추석은 내 인생의 두 번째 생일 같은 날"이라고 말했다.
해양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선박 내 응급의료 공백을 다시 드러낸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선원법'에 따라 총톤수 5,000톤 이상 상선이나 300톤 이상 어선에는 '의료관리자(선의)'가 승선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대부분 의사 대신 간호사나 교육 이수자가 담당하고 있다. 의료장비 또한 최소한의 응급약품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4년 기준 국내 등록 외항상선 1,172척과 어선 6만3,700여척 중 의료관리자 의무 대상은 일부에 불과하다. 선상에서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경우 골든타임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이현국 교수는 "심근경색은 '시간과의 싸움'으로, 가슴 통증이 지속되면 반드시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며 "바다처럼 의료 접근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원격의료 시스템과 응급대응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의료관리자 제도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며 "선원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