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고문·살해 그리고 중국계…그들은 왜 캄보디아로 향했나 [해시태그]

입력 2025-10-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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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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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해외취업 알바, 월 1000만 원, 숙소 제공, 언어 무관”

한 줄의 구인 광고에 인생이 뒤집혔습니다. 박람회를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떠난 한 대학생은 귀국하지 못했는데요. 발견된 시신은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현지 경찰은 사인을 “고문으로 인한 심장마비”라 발표했죠. 가볍게 떠난 여행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었는데요. 현재 캄보디아는 한국인들에게 ‘공포’의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7월 대학생 A 씨는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했죠. 지인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곧 일자리 계약을 앞두고 있다”였는데요. 그러나 출국 일주일 만에 연락이 끊겼고 가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들이 연락이 두절됐다”며 구조를 호소했습니다. A 씨는 8월 초, 캄보디아 캄폿주 보코산 인근의 범죄단지에서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는데요. 함께 감금됐다가 구출된 동료 B 씨는 국회에 “A 씨는 걷지도, 숨도 못 쉬는 상태였고 병원 이송 중 숨졌다”고 증언했죠. A 씨가 감금돼 있던 곳은 이른바 ‘웬치’라 불리는 중국계 범죄단지였습니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12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는 330건에 달했는데요. 불과 2년 전 연간 10~20건 수준이던 숫자가 15배 이상으로 급증했죠.

지난달에는 50대 한국인 남성이 수도 한복판 카페 앞에서 대낮에 납치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요. CCTV에는 그가 음료를 들고나오다 낯선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차량에 밀려 들어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죠. 피해자는 이틀 뒤 고문을 당한 상태로 구조됐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외교부는 10일 기존 ‘여행자제(2단계)’였던 프놈펜 지역의 여행경보를 ‘특별여행주의보’로 상향했죠.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사건의 배경에는 ‘사기산업’의 지리적 이동이 있는데요. 과거 미얀마·라오스 접경 지역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활개 치던 중국계 온라인 사기 조직들이 단속을 피해 치안이 허술한 캄보디아로 이동한 거죠.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이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던 사람들에게 캄보디아는 ‘기회의 땅’으로 포장돼 있었는데요.

SNS와 구인 사이트에는 “해외 마케팅팀 모집”, “IT 고객응대직”, “SNS 알바”라는 광고에 혹한 취준생, 거기다 범죄 단체에 이미 납치된 한국 지인들의 꼬임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협박에 의한 것이었죠.

월 800만~1500만 원, 숙식 제공, 항공권 무료. 심지어 ‘한국인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라는 문구에 취준생들은 혹했는데요. 광고를 믿은 청년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 인스타그램 DM, 텔레그램을 통해 채용담당자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대부분 2~3주간의 ‘신뢰 구축’ 뒤 항공권을 받아 출국했죠.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씩,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도착 후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량은 회사가 아닌 범죄 소굴로 향했는데요. 그들은 휴대전화와 여권을 빼앗기고 철조망과 감시카메라로 둘러싸인 범죄단지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은 외형상 호텔·리조트·사무실이었지만, 내부는 감옥에 가까웠죠. 피해자들이 맡은 일은 다양했습니다.

가장 흔한 건 보이스피싱 콜센터 업무였는데요. 하루 300통 이상 전화를 걸어야 했고, 거부하면 구타와 전기고문이 이어졌습니다. ‘돼지 도살(pig-butchering)’형 암호화폐 투자사기도 이들의 일이었죠. SNS에서 연애나 친구 관계로 접근해 신뢰를 쌓은 뒤 가상화폐 거래를 유도하는 사기였는데요. 피해자들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며, 실제 돈세탁 구조의 일부가 됐죠. 이 밖에도 가짜 쇼핑몰이나 도박 사이트 고객센터, 불법 송금 창구를 운영하게 하거나 심지어 마약 운반까지 강요당한 사례까지 나왔습니다.

탈출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단지 외벽은 높이 5m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무장 경비원과 전기 방벽이 설치됐는데요.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도망치다 잡히면 쇠파이프로 맞거나 ‘본보기’로 공개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죠.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수사당국과 국제기관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배후는 중국계 자본입니다. 캄보디아 내 다수의 온라인 사기·보이스피싱 단지들은 중국에서 도박·자금세탁 혐의로 수배된 인물들이 세운 기업 혹은 그들의 위장 투자처로 밝혀지고 있죠.

대표적인 사례가 ‘후이원 그룹(Huione Group)’인데요.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은 5월 “후이원 그룹이 국제 불법 수익의 주요 세탁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며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으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로이터 등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1년 이후 약 40억 달러(한화 5조 원 이상) 규모의 불법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일부 자금은 북한 해킹조직이 탈취한 암호화폐 자금으로 추정되죠.

캄보디아 내 범죄단지는 중국계 범죄조직 자금과 부패한 현지 권력층의 결탁 구조 속에서 유지되는 그림자 경제권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로이터 등은 “시아누크빌 일대에서 위안화가 사실상 통용 화폐로 자리 잡고 간판과 상호 대부분이 중국어로 바뀌었다”고 전했죠. 또 “중국의 일대일로(BRI) 명목으로 캄보디아에 유입된 자본 상당수가 부동산·카지노 개발로 가장된 사기·착취형 산업으로 이용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제공-외교부)
(사진제공-외교부)


캄보디아 교민사회는 “사건이 끝난 게 아니라 매일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박찬대 의원은 13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8월 말 기준 실종·납치 신고가 330건”이라며 “현지 경찰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이 ‘경찰과 다 연결돼 있다’는 협박 속에 공포심으로 지배당한다”며 “몸은 구출됐지만 마음은 아직 갇혀 있다”고 말했죠.

같은 날 정명규 캄보디아 한인회장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올해만 400~500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매주 구조 요청이 이어진다”고 전했는데요. 이어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범죄 조직이 점조직으로 퍼졌고 코로나 이후 폐업한 공장들이 아지트로 변했다”며 “20~40대 청년층이 주 피해자”라고 했죠.

캄보디아를 향한 혐오는 더 격해졌는데요. 공포가 혐오로 바뀐 거죠. SNS에는 “캄보디아 가면 납치돼 노예 된다”, “캄보디아 GDP 절반이 범죄수익” 같은 확인되지 않은 글이 퍼졌는데요. 캄보디아인 전체를 비난하거나 중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확산됐습니다. 정명규 한인회장은 “외교부의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논의 중이지만, 현지에는 ‘왜 우리나라가 범죄 국가로 낙인 찍히느냐’는 반한 감정이 퍼지고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계속된 사례 속 외교부는 긴급 구조팀을 파견하고 경찰청은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추진 중입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아세안폴 등과 협력해 범죄단지 위치를 특정하고 탈출자 송환 절차를 개선하고 있죠. 하지만 현지 경찰의 부패와 느린 행정 탓에 구조까지 수일이 걸리며 피해자 가족들은 “하루가 한 달 같다”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언론자유지수는 올해 180개국 중 161위, 부패인식지수는 158위인데요.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보코산 일대에는 수십 개의 범죄단지가 존재하며 무장 경비원들이 총을 든 채 외국인들을 감시하고 있죠. 일부 단지는 이미 다른 도시로 이동하며 위치를 은폐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외국인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국가 단위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데요.

A 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그가 왜 그곳으로 향했는지, 무엇을 겪었는지, 우리 사회는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죠. 터무니없는 사기였을지 모르지만, 국가 간의 방치와 무관심이 만들어낸 인권의 공백이기도 한데요.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죠. 공포와 혐오를 넘어, 구조와 책임으로 나아갈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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