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사무라이채권 발행이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금리인상 기조와 미·일 관세 협상 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외 발행사들이 엔화 표시 조달을 줄인 탓이다. 여기에 금리 변동성과 정치 리스크까지 겹치며, 한동안 사무라이채 시장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13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발행된 사무라이 채권은 6921억 엔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9327억 엔) 대비 25.8% 감소한 수준이며, 2023~2024년 연평균 발행액 1조5000억 엔 안팎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도 절반에 못 미친다. 현재까지 발행 건수 역시 10건에 그쳐 최근 5년래 최저다.
특히 올해는 5월까지 발행이 단 3건에 그쳤다. BOJ는 1월 기준금리를 0.25%에서 0.5%로 인상한 뒤 동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추가 인상 시점을 놓고 매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산 제품에 부과한 15% 수준의 관세 조치가 일본 경제 전반의 물가 불안으로 이어지면서 외화 조달비용 리스크를 키운 점도 영향을 미쳤다.
사무라이채권은 일본 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계 발행채권으로, 엔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러채와 함께 발행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금리 변동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듀레이션(원금 회수 기간) 을 줄이는 한편, 발행사들도 조달비용 부담을 감안해 중단기물 위주로 선회했다.
연초 이후 5년 만기 일본 국채(JGB) 금리는 0.75%에서 1.23%로 상승했다. 일본은행의 자산매입 축소, 재정 확대 전망이 겹치면서 장기물 금리가 더 가파르게 뛰었다. 이런 금리 구조 속에서 해외 발행사들은 장기물 대신 중단기물 발행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3~5년물이 전체 발행의 75%를 차지하며 5년물 비중을 넘어섰다.
업종별로는 은행 부문이 전체 발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유럽계 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 BPCE, HSBC 등이 주로 발행했고, 인도네시아와 프랑스전력공사(EDF), 중남미개발은행(CAF) 등도 잇따라 발행에 나섰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대한항공이 1월 한국수출입은행 보증으로 300억 엔 규모 사무라이채를 발행했으며, 2월에는 KT가 6년 만에 300억 엔(2·3년물)을 발행하며 시장에 복귀했다.
가산금리는 소폭 상승했다. 금리 상승 요인으로는 이시바 총리의 사임 이후 정치 불확실성이 꼽힌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양원 과반을 잃은 상태에서 차기 정부가 재정 확대와 통화 완화 정책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BOJ의 10월 추가 인상 여부와 미·일 금리차 축소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미·일 관세협상이 7월 타결되며 시장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된 점은 긍정적이다. 미국이 당초 예고한 25% 관세율보다 낮은 15%로 조정하면서 일본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향후 발행여건은 점차 개선될 여지도 있다. 일본은행이 내년 초 추가로 2회 금리를 인상해 최종금리가 1.0%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미·일 금리차 축소로 환헤지 비용이 줄어드는 점은 긍정적이다. 미국이 당초 예고한 관세율보다 낮은 15%로 관세협상이 타결되면서 일본 물가에 미치는 충격도 제한적이라고 본다.
김선경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일본 역내채권과 달러채 간 조달비용 격차가 여전히 크지만, 금리 구조 변화로 채권 간 차이가 작년 말보다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엔화 채권의 금리 매력도가 커지고 있어 하반기 이후부터 사무라이채 발행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