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과 과잉생산 문제 논의 중”
세이프가드 발동하면 새 규제 대체
韓, 협상 여지 열렸지만 압박 강화 우려도

철강 관세를 50%로 인상하기로 한 유럽연합(EU)이 상황에 따라 자유무역협정(FTA)에 명시된 ‘양자 간 세이프가드(Bilateral Safeguard)’를 발동해 체결국들과 협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13일 올로프 길 EU 집행위원회 무역담당 대변인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철강 관세 협상 가능성에 관해 이같이 밝혔다. 길 대변인은 “일부 FTA 파트너들은 지속해서 과잉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며 “우린 이들과 성실히 협의하면서 이번 조치의 내용과 잠재적 영향을 설명하고 향후 방향을 논할 것이고 필요하면 각국과의 FTA 내 양자 간 세이프가드 조항을 발동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EU는 이미 한국, 일본, 영국, 멕시코 등 FTA 파트너들과 과잉생산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라며 “우린 활발히 작동하는 FTA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FTA 체결국은 (철강) 전체 수입의 67%를 차지한다”며 “현실적으로 이들로부터 들여온 수입품을 이번 조치에서 배제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EU 집행위는 7일(현지시간) 내년 6월 만료되는 세이프가드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저율관세할당(TRQ)’을 제안했다. 수입 쿼터를 축소하고 초과 물량에 매기던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집행위가 발간한 제안서는 회원국들과 유럽 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발효된다.
제안서에 따르면 EU는 FTA를 체결한 국가들을 상대로 철강 관세 대상이 되는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항을 발동할 수 있다. 발동된 세이프가드는 집행위의 이번 제안을 대체한다는 점도 명시됐다.
내년 6월까지인 세이프가드와 EU가 새로 제시한 TRQ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기반을 둔 다자간 영역이라면 FTA를 통한 양자 간 세이프가드는 국가 개별 사례로 다뤄지게 된다. 이 경우 EU는 세이프가드 상대국과 보상을 합의해야 한다. 합의되지 않으면 FTA 규정에 따라 상대국은 일정 기간 후 세이프가드로 발생한 피해 규모에 상응하는 양허 정지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보복성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체결된 한국과 EU FTA 전문 3.4조에 따르면 보상 합의는 협의기 시작한 후 30일 안에 이뤄져야 한다. 양허 정지는 세이프가드가 발동된 지 24개월이 지나면 행사하도록 했다.
다만 EU가 이번에 공개한 제안서에는 FTA에 따라 자신들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다는 내용만 명시됐을 뿐 상대국 보상이나 상응 조치에 관한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EU가 철강 관세 인상의 타당성과 적법성을 강조하면서도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FTA 체결국들에 전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의 경우 협상 여지가 열렸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유럽에서도 FTA 체결국을 향한 EU의 대우를 부당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유럽 대표 싱크탱크 브뤼겔은 지난주 보고서에서 “FTA에 양자 간 세이프가드 조항이 포함됐다고 해서 이것이 WTO 세이프가드가 종료된 후 자동으로 쿼터를 적용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며 “대규모 보상 의무를 피한 채 무관세 철강 수입량을 47%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FTA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목표와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