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사유에서 명상으로

입력 2025-10-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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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Ev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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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는 관람객들이 어김없이 발길을 멈춘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와 경건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놓인 두 점의 조각상은 보살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살이란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열반을 미루고 세상에 남아 자비의 실천을 이어가는 존재다. 따라서 이 보살은 깨달음 직전의 찰나일 수도 있고, 여전히 속세의 번뇌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는 명칭은 과연 이 상의 본뜻을 담아내고 있을까. 이름만 보면 한쪽 다리를 반대편 무릎에 걸쳐 올린 채 깊이 생각에 잠긴 형상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서구의 조각상, 특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종종 비교된다. 자세와 외형만 놓고 보면 설득력이 있지만, 내적 지향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이 상이 표현하는 정신은 단순한 ‘사유’라기보다는 ‘사유수(思惟修)·선정(禪定)’, 곧 명상에 가깝다.

산스크리트어 ‘디야나(dhyāna·禪定)’는 단순한 사색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심화되는 정신 훈련을 뜻한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고 잡념을 내려놓으며 내적 통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역 과정에서 이를 ‘사유’로 옮기면서,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오늘날처럼 ‘생각하는 보살’로 받아들여졌다. 이름은 사유지만, 보살상의 실제적 상태는 명상이다.

사유와 명상은 동서양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만큼 다르다. 서구적 사유는 분석과 증명을 통해 대상을 확장하고 심화한다. 로댕의 조각은 긴장된 근육으로 사고의 무게를 견디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적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 반가좌의 보살상은 덜어냄을 암시한다. 명상은 새로운 사유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채워진 분별과 집착을 비워내는 과정이다. ‘무(無)’를 향한 고요한 관조, 반복적 내적 훈련을 통한 집중, 그것이 바로 디야나의 본뜻이다.

한국 반가사유상의 독창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형식은 보살이지만 그 얼굴에는 부처의 평정과 미소가 스며있다. 반쯤 감긴 눈은 세속을 초월한 듯 고요하고, 입가의 곡선은 깨달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아직 보살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 표정과 기운은 부처의 경지에 닿아 있다. 고요히 사유하면서, 동시에 사유를 넘어선 명상의 세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상은 ‘생각하는 보살’이라기보다, ‘깨달음에 다가선 존재’의 상징이다.

외형적 유사성만으로 로댕 조각과 나란히 세우는 것은 충분치 않다. 서구 조각이 존재를 입증하려는 긴장된 몸짓을 보여준다면, 반가사유상은 사유를 비워내고 존재의 근원과 합일하려는 내적 고요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조각상을 여전히 반가사유상이라고 불러도 충분할까. 불교의 근본 언어가 명상에 가까움에도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사유로 이해하고 그렇게 불러 왔다. 그 때문에 종종 서구적 사유의 상징과 대비하면서, 이 조각상의 본래 정신을 놓쳐 온 것은 아닐까.

이 조각상은 보살이면서 동시에 부처인, 생각과 명상 사이에 선 존재다. 단순한 사유를 넘어 명상적 고요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야 비로소, 채움이 아닌 비움의 지혜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앞에 서면 우리는, 존재의 근원을 향한 동서양의 길을 동시에 성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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