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이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도 기업들의 배당 수준을 놓고 직접 제동에 나섰다. 실적에 비해 턱없이 적은 배당을 실시하는 ‘과소배당’ 기업뿐 아니라, 재무 건전성을 해칠 정도로 과도한 배당을 쏟아내는 기업까지 동시에 지목하며 재무제표 승인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3월까지 열린 12월 결산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에서 세방전지, 한국정보통신, 동양이엔피, 비올, 종근당, 태광산업 등 6개사를 과소배당 기업으로 지목하고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했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말 평균 배당성향은 6.41%로, 유가증권시장(34.74%)이나 코스닥(34.4%) 배당 법인의 평균치에도 한참 못 미쳤다. 한국거래소 밸류업 공시법인 평균 배당성향(40.95%)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 평균이 50% 수준임을 감안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격차는 더 크다.
해당 기업들은 안정적인 현금창출력과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주주환원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동양이엔피는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이 2022년 5.0%, 2023년 8.0%, 2024년 9.4%로 급성장했다. 순현금에 장기투자증권을 더하면 2090억 원으로 시가총액(1674억 원)을 웃도는 수준이지만, 배당성향은 6.60%에 그쳤다. 이는 비올(3.54%)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치다.
주주환원에 소극적인 기업뿐 아니라 과도한 배당에도 제동을 걸었다. 율촌화학, 케이카, 마크로젠 등이었다.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이 낮은 수익성에 비해 높은 배당성향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장기적으로는 재무 건전성을 해치고 기업 체력 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주주총회 안건 중 배당 안건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왔다. 국민연금 내부 규정에 따르면 과소배당·과다배당 반대 원칙은 각각 주주이익의 적정 환원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와 과도한 배당으로 기업의 안정적 성장 기반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경우로 명시한다.
이번 재무제표 안건 반대도 국내 증시의 낮은 주주환원 기조와 맞닿아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도 배당성향은 여전히 글로벌 평균에 못 미친다는 비판은 꾸준하다. 국민연금은 과거에도 다수 기업에 과소배당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고, 이후 상당수 기업들이 다음년도 배당성향을 끌어올린 전례가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가 기업들의 배당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 기업만 수백 곳에 이른다. 의결권 행사 방향은 곧 기업 지배구조 개선 신호로 읽히고,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준다. 국민연금은 공개적으로 재무제표 반대 의사를 밝힌 기업이 다음 정기 주주총회까지 배당정책을 바로 잡지 않으면 비공개 중점관리 기업으로 선정하고, 해당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포함하는 ‘네임앤셰임(Name & Shame·공개 망신주기)’를 택한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지난달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KOREA CAPITAL MARKET CONFERENCE 2025'(KCMC 2025)에 참석해 "한국 시장의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고 기금의 장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다양한 주주활동을 펼쳐왔다"며 "기업의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