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인간 대체 위기, 인간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

입력 2025-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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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그리고 로봇주의 역설적 급등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8월 25일, 국내 증시에서는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대부분 업종이 보합세이거나 약세였지만, 유독 로봇 관련주만 7~19%대 급등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로보티즈, 유일로보틱스, 나우로보틱스 등 코스닥 시장에서 로봇 관련 종목들이 단숨에 상한가 근처까지 치솟았다.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자는 법이 통과된 그날, 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의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로봇을 고용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근로자의 교섭권을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지는 명확하다. 하청과 원청,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보다 공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해석은 달랐다. 파업과 집단행동의 리스크가 커진 만큼, 인건비와 법적 위험에서 자유로운 대체재, 즉 로봇과 자동화를 더 빠르게 도입하라는 것이다.

시장은 잔인할 정도로 계산적이다. 로봇은 파업을 하지 않고,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며, 손해배상 소송의 당사자가 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로봇은 경영자의 눈에 가장 안정적인 자산이다. 증시에서 로봇주 급등은 단기적인 테마 장세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한달여가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며, 한국 산업 구조가 노동과 자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점차 ‘인간 대체’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 4.5일제 논쟁, 생산성의 벽에 부딪히다

동시에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논의에 휩싸여 있다. 바로 주 4.5일 근무제다. 현 정부는 주 4.5일제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대표 노동개혁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을 넘어, 저출생 해소, 일과 삶의 균형, 세대별 삶의 질 개선을 연결 지으려는 정치·사회적 시도가 병행되고 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는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자유”라는 요구가 확산되며 제도 개혁의 동력이 되고 있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도입을 요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저하를 우려해 신중론을 편다. 시민사회와 젊은 세대에서는 저출생 문제 완화, 삶의 질 개선 등 긍정적 기대가 많다. 그러나 제도의 도입 여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결국 생산성이다.

최근 발표된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생산성은 6만5000달러(약 9114만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2위에 불과하다. 이미 주 4일제를 도입한 벨기에(12만5000달러), 아이슬란드(14만4000달러)의 절반 수준이고, 프랑스·독일·영국 등 시범사업을 운영하는 국가에도 크게 못 미친다.

SGI는 “근로시간 단축은 직무 만족도와 여가 확대, 소비 진작에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시간당 생산성 향상 없는 단축은 기업의 경영 부담만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 2018년 이후 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면서 노동집약적 산업과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했다.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 투자로 생산성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지만, 영세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 결과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라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국제 비교의 시사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주 4일제를 시행하거나 시범 운영 중인 선진국들은 노동시장 유연화,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재교육과 전환 지원 등 제도적 보완책을 병행하고 있다. 단순히 근무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인력 활용 방식을 유연하게 하고,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한국이 단순 수치만 비교해 동일한 제도를 적용하기에는 제도·시장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논의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노동의 가치와 비용을 어디에 둘 것인가.” 법과 제도는 노동자의 권익과 삶의 질을 지키려 하지만, 기업과 시장은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선택을 한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시장은 인간 대신 로봇을 향한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피지컬 로봇이 결합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생성형 AI가 지식노동을 위협하듯, 피지컬 AI는 제조·물류·서비스 전반에서 인간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노동권 강화 같이 인간을 지키려는 제도가 오히려 인간을 노동시장에서 밀어내는 아이러니가 눈앞에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또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 과거에는 노동이 인간의 존재 이유였고, 결핍을 메우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노동을 대신하고, 결핍을 줄여가는 시대에는 인간이 새로운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가치를 창조하고, 의미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자산이다.

빌 게이츠가 자선사업을 접고 기술 발전에 미래를 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빈곤과 질병 같은 결핍은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결핍이 줄어든 사회에서, 인간은 더 이상 ‘무엇을 갖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들며’ 살아야 하는지가 중심이 된다.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로봇과 AI의 부상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인간 대체의 위기가 다가올수록, 인간은 오히려 자기 존재의 이유를 더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야말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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