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완전하게 소유·통제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보조금 지급이 아닌,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 중 하나를 국가가 직접 품에 안은 초유의 사례였다.
인텔은 엔비디아·AMD·브로드컴과 달리 미국 내에서, 미국인에 의해, 미국을 위해 칩을 만드는 유일한 종합 반도체 제조사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미국 반도체 주권은 미국이 지킨다”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모터스(GM)를 구제금융으로 살린 적은 있으나, ‘그냥 내버려두면 망할 것 같아’ 보조금 대신 지분을 인수한 건 전례없는 일이다. 이는 국가가 경제 생태계의 ‘문지기’를 자처하며, 민간 기업에 대한 권력과 통제의 새 국면을 예고하는 행보다.
트럼프식 ‘Pay-me Capitalism’은 팬데믹 이후 공급망 불안,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고개를 든 국가자본주의의 새로운 양상이다. 공식 경제학 용어는 아니다. 한 온라인 매체가 트럼프 경제 정책과 국가-민간 기업 관계를 풍자하는 과정에서 만든 신조어다. 핵심은 ‘미국에서 사업하려면 내 조건을 따르라’는 시장 지배력 강화 전략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분명하다. 인텔 지분 확보 소식만으로도 22일 금융시장은 안도했으며,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귀환’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얻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이어 ‘MAMA(Make America Manufacture Again)’ 같은 구호가 힘을 얻는 배경이다.
그러나 인텔의 위기는 단순한 자금난을 넘는다. 삼성전자와 TSMC 등에 뒤처진 기술력과 파운드리 경쟁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지분 10% 확보만으로 이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부에도 시사점은 크다. 이재명 정부의 ‘소버린 AI’ 전략은 민관 협력형 투자 모델이다. 정부가 국가대표 AI 기업을 지정, 수 천억 규모의 연구개발 자금과 슈퍼컴퓨터 등 인프라를 지원하며 AI 기술 독립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한다. 다만 과도한 정부 주도는 효율성 저하와 민간 참여 위축의 위험을 내포한다.
전략 자산을 둘러싼 한미 두 나라의 접근방식은 다르다. 미국은 지분 확보라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반면, 우리나라는 협력형 투자를 통해 생태계 전체를 키우려 한다. 그럼에도 공통된 메시지는 반도체와 AI는 더 이상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국가 전략 자산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개입 여부가 아니라 ‘개입 방식’이다. 정치 이벤트로만 소비되면 단기 성과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장기적 산업 경쟁력 강화, 투명성과 지속성, 그리고 글로벌 협력이라는 뒷받침 없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Pay-me Capitalism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 중국, 일본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 개입을 강화하며 전략 자산을 보호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질서 자체가 이제 ‘열린 시장’에서 ‘조건부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 또한 이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 반도체와 AI, 배터리와 같은 전략 자산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Pay-me Capitalism은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인정한 자리에서 태어났다. 국가 전략 자산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국가 개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식 Pay-me Capitalism이 단기 정치적 승리를 넘어, 장기 산업 경쟁력까지 살려낼 수 있을까. 그것이 이번 실험의 진짜 성패를 가를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