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부모의 이혼을 지켜보는 아이

입력 2025-09-25 20:1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이사’, 소마이 신지 감독, 2025년>

2001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한 소마이 신지는 일본 영화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감독이다. 일본의 대표적 영화잡지인 키네마준보가 2009년에 발표한 ‘일본 영화 200선’에 그의 영화가 5편 들어 있다. 이 중에 ‘이사’(1993)가 다른 한 편과 함께 최근에 4K 디지털로 복원되었는데, 그걸 계기로 일본에서 작년에 리바이벌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올해 처음으로 개봉했다. 사실 ‘개봉’이란 말이 무색하게 작은 영화관이지만 두 달째 상영하고 있고 약 4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건 상당히 놀랍다. 주인공 아이가 아주 귀여운 데다 한국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라서 그럴 것이다.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 소녀 렌이 부모의 이혼을 지켜보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첫 장면은 렌이 엄마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걸 보여준다(식탁이 삼각형인 게 특이하다). 생선을 잘 발라 먹지 못하는 아빠를 보고 렌이 묻는다. (아이는 아빠가 곧 별거하는 걸 알고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잖아. 진짜 혼자 먹고살 수 있어?” 어른스럽게 놀린다. 관객이 미소 짓게 한다. 다만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상황이라 처음 보는 사람은 맥락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정서의 대사가 아빠가 이사 간 집에서도 나온다. 아빠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자 아이가 “엄마 보고 싶지?”, “벌써 집이 그리워?”라고 놀린다. 애써 상황을 가볍게 보려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가 너무 천진해 보여, 뒤에 두려움이 숨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렌 역의 다바타 도모코는 수천 명 중에서 선발되었다고 한다. 데뷔작인데 연기가 놀랍다. 더구나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길게 찍은 장면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별거 후 엄마 나즈나는 딸과 같이 살며 일견 해방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러나 단순하진 않다. 집안에 모셔놓은 시어머니 위패 앞에서 “겐이치가 집 나갔어요. 나갈 것까진 없었는데…. 이 집을 버렸어요. 호되게 혼 좀 내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10여 년을 같이 살았는데 단순할 순 없다.

둘은 왜 헤어졌나. 렌이 예전 아빠 방에 자신을 가두고 농성하는 사태로 인해 둘이 말다툼할 때 과거가 조금 드러난다. 겐이치 혼자 돈을 벌었을 때는 나즈나가 전통적 여성 역할을 수용하며 살았다. 그러나 나즈나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겐이치가 변했단다. 나즈나는 옆에 있던 후배 여자에게 결혼이란 “센 사람 마음대로 하는 생존 게임이야”라며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초반에도 관련 대사가 나온다. 겐이치의 이사를 돕고 있던 후배가 “본인 집이니 일 좀 하라”고 하자 겐이치가 “여기 내 집인데 왜 네가 잔소리야?”라고 대꾸한다. 그러고는 “나즈나 같은 녀석이네”라고 한다. 자기중심적 가부장이 엿보인다.

렌은 마지막으로 전에 가족이 놀러 갔던 관광지로 부모를 유인하여 화해를 시도한다. 엄마 몰래 호텔도 예약한다. 그곳은 불꽃 축제로 잘 알려진 비와(琵琶) 호수다. 나즈나는 딸과의 여행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도착하지만 기다리던 겐이치를 보고는 표정이 굳어진다. 겐이치는 “다시 한번 셋이 잘해보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나즈나는 “좋았을 때처럼 셋이 모여서 우리 뭐 하는 거냐”고 묻는다.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원망한다.

렌은 혼자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노인의 집에 가게 된다. 그 노인의 아들 둘은 젊을 때 사망한 것 같은데 노인의 나이로 봐서 태평양전쟁 때일 것이다. 노인은 “잊는 게 더 낫단다”라고 충고한다. 축제로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거쳐 아이는 어두운 숲속을 헤맨다. 그 시퀀스가 매우 길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긴 여정이다. 작년에 이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 여기서 좀 과한 감정이입을 했었다. 이번에 이 글 때문에 다시 봤을 때는 그런 게 없었지만.

어떤 시인은 “이별은 조금 죽는 것”이라고 했다. 비와 호수의 축제는 죽은 이의 영혼을 맞이하고 다시 보내는 행사다. 렌은 그 불의 축제 속에서 자신의 일부를 떠나보낸 것일 수 있다. 마지막에 아이는 호수를 향해 크게 외친다. “축하합니다!” 상실의 아픔을 극복한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혹은 단란했던 과거의 가족에게 하는 말일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미래에 어떻게 되든, 행복을 누린 사람을 축하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나.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단독 우크라이나 아동 북송 됐다는 곳,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였다
  • '소년범 출신 논란' 조진웅, 결국 은퇴 선언
  • 강남 찍고 명동ㆍ홍대로…시코르, K-뷰티 '영토 확장'
  • 수도권 집값 극명하게 갈렸다…송파 19% 뛸 때 평택 7% 뒷걸음
  • 사탐런 여파에 주요대학 인문 수험생 ‘빨간불’…수시탈락 급증
  • 흰자는 근육·노른자는 회복…계란이 운동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 [에그리씽]
  • '그것이 알고 싶다' 천사 가수, 실체는 가정폭력범⋯남편 폭행에 친딸 살해까지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3,641,000
    • -0.27%
    • 이더리움
    • 4,545,000
    • +0.4%
    • 비트코인 캐시
    • 880,000
    • +2.09%
    • 리플
    • 3,037
    • -0.03%
    • 솔라나
    • 197,600
    • -0.45%
    • 에이다
    • 624
    • +1.3%
    • 트론
    • 428
    • -1.15%
    • 스텔라루멘
    • 360
    • +0.28%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360
    • +0.23%
    • 체인링크
    • 20,840
    • +2.41%
    • 샌드박스
    • 214
    • +1.4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