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으니까.
레전드 추리 예능 프로그램 '크라임씬'이 돌아왔습니다.
새 시즌의 이름은 '크라임씬 제로'. 공개 전부터 팬들의 반가운 목소리는 컸는데요. 2014년 첫 방송된 예능은 국내 최초 롤플레잉 추리 예능 장르물로 시선을 모았습니다. 출연진이 살인 사건 한복판에 뛰어들어 용의자, 동시에 탐정이 돼 범인을 밝혀내는 남다른 콘셉트로 호평을 받았죠. 독보적인 몰입감, 침을 삼키게 되는 긴장감으로 팬덤까지 형성하며 2017년까지 시즌3가 방송됐고, 이후 7년 만인 지난해 '크라임씬 리턴즈'가 공개된 바 있습니다.
이로부터 1년 반인 어제(23일) '크라임씬 제로'가 공개되면서 팬들의 환호를 자아냈는데요. 이번 시즌은 더 특별합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넷플릭스와 손잡으면서 대형 세트와 영화 같은 연출에 더욱 힘을 실었고 기존 시즌을 넘어선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팬들 사이에서는 "시작부터 미쳤다!"는 다소 격한 호응이 쏟아지는 중입니다.

2014년 JTBC에서 방송된 '크라임씬'은 한국 예능사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프로그램으로 꼽힙니다.
출연자들이 살인 사건 속 인물로 분해 현장을 재현하고, 단서를 찾아 범인을 추리하는 방식은 관찰·오디션 예능이 주도하던 당시 방송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당초 시즌제 제작이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나 종영 이후 시즌2 제작을 확정, 이듬해인 2015년에 시즌2가 방송됐죠. 시즌3는 2017년 공개됐습니다.
다만 이후 오랜 공백이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OTT 티빙에서 공개된 '크라임씬 리턴즈'는 7년 만의 새 시즌이었는데요. 팬들의 관심도 남달랐습니다. 방송 기간 비드라마 화제성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기록을 이어가는 건 기본, 티빙 오리지널 중 주간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에 등극하며 흥행몰이를 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시즌들까지 티빙 차트에 올리는 등 새 기록을 썼죠.
'크라임씬' 시리즈는 세계 3대 TV 시상식인 뉴욕 TV&필름 페스티벌 본상을 비롯해 아시안 텔레비전 어워즈 최우수상과 휴스턴 국제 영상 영화제 금상 등을 수상하며 K-예능의 위엄까지 자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히 사랑받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탄탄한 사건 구성과 치밀한 반전 설계인데요. 매회 사건은 실제 범죄 현장을 방불케 하는 세밀한 세트와 다층적 서사로 꾸려집니다. 단서 하나가 엇갈리며 상황이 바뀌는 구조, 예기치 못한 결말의 반전은 시청자에게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를 주죠.
출연진의 몰입형 연기와 캐릭터 플레이도 압권입니다. 방송인·배우·가수 등 다양한 스타가 각 에피소드의 역할에 순식간에 몰입해 심리를 표현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실패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이끌어내는데요. 단순한 추리력 경쟁을 넘어 캐릭터와 케미스트리에서 오는 재미가 시청자를 붙잡았죠. '크라임씬' 시즌1부터 함께한 터줏대감이자 '추리 여왕'으로 사랑받는 박지윤이 대표적입니다. 뛰어난 논리력,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는 카리스마, 배역 자체가 되는 연기력으로 '올라운더' 타이틀을 거머쥔 주인공이죠. '미인대회' 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명작입니다. "오케이! (벌떡) 쟤가 알았던 거야"로 시작하는 명대사는 '올타임 레전드'로 꼽히죠.
시청자 참여형 구조도 한몫했습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 역시 출연자와 동일하게 단서를 접하며 범인을 추리할 수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토론이 활발히 이어지곤 하는데요. 단순 관람자가 아닌 '함께 하는 추리'가 가능하다는 체험성이 방송의 강력한 차별점으로 작용했죠. 시청자 참여도가 높고 탄탄한 팬덤까지 형성되다 보니 믿고 보는 지식재산권(IP)으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했습니다.
2017년 시즌3 이후 장기간 공백에도 재방송과 클립 영상이 회자된 이유, 지난해 '크라임씬 리턴즈' 공개 직후에도 팬들이 끊임없이 "새 시즌을 내놓으라"고 외쳤던 것도 바로 이 대체 불가능한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꾸준한 제작과 공개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단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쉽게 투입하기 어려운 규모의 제작비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해 '크라임씬 리턴즈' 공개 기념 인터뷰에서 윤현민 PD는 "제작진도 '달라야 한다, 더 좋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도 1~2달이 걸렸다"며 "제작비 문제도 컸다. 과거 '크라임씬'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는 지원을 충분히 받았다. 마지막으로 JTBC에서 했던 시즌과 비교했을 때 회당 4~5배 받은 것 같다. 물론 7년 전보다 물가 및 외부 리소스 사용 단가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예상한 건 2배 정도라 깜짝 놀랐다"고 밝힌 바 있죠.

'크라임씬 리턴즈'로부터 약 1년 반 만에 공개된 '크라임씬 제로'. 역시나 남다른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번 새 시즌은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에서 공개됐습니다. 우선 1~4회가 23일 베일을 벗었는데요. 첫 사건 '폐병원 살인사건', '장례식장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며 초장부터 시리즈의 정체성을 강하게 각인시켰죠.
이번 시즌 제목에 '5'가 아닌 '제로'가 붙은 건 초심과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선데요. 16일 제작발표회에서 윤현준 PD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크라임씬'의 본질에 충실하자라는 마음과 '크라임씬'이 어떤 프로그램인지를 글로벌 시청자분들에게도 알려드리자는 마음을 담았다"며 "초심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큼 진화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설명해 기대를 높였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이 같은 고민과 의지가 고스란히 체감됩니다. 5년 전 실종된 인물이 폐병원 외벽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강렬한 설정, 장례식장 가족사 속에 얽힌 금지된 사랑과 '혐관' 케미스트리가 시청자들의 추리 본능을 자극했죠. 여기에 누구도 몰랐던 폐병원 내 6층 공간, 2차 산사태 같은 대형 사건 장치가 더해지면서 사건 전개가 갑자기 새 국면에 접어들고 혼란도 심화하는데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심리전까지 치밀하게 배치되며 '드라마, 혹은 영화'라는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레전드 플레이어' 장진, 박지윤, 장동민, 김지훈, 안유진은 경력직의 노련함을 뽐냈습니다. 장진은 탐정 역할로 제작진의 의도를 간파하는 날카로운 추리력을 보여주는가 하면 박지윤은 '추리 여왕'다운 몰입감으로 극을 들었다 놨다 했죠. 장동민은 직설적 화법과 폭발적인 리액션으로 현장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했으며 김지훈은 섬세한 감정 연기로 반전의 키를 쥔 활약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는데요. 안유진은 '단서 사냥꾼'으로 활약하며 치열하게 사건을 파고들었습니다. 박성웅, 주현영 등 게스트들의 활약도 몰입도를 더했죠.
'크라임씬 리턴즈'보다도 더 커진 스케일도 감탄을 더합니다.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는 스튜디오에 한강을 만들어 수상 택시를 띄운 모습이 공개돼 화제를 빚은 바 있는데요. 장진은 "제작진을 보고 '이 사람들은 돈 벌 생각이 없나?' 싶더라. 눈으로 대강 봐도 너무 많은 걸 투자를 하니까 정말 대단하더라"며 "대강 만들어야지, 모든 출연진과 자동차가 올라가게끔 하는 건 건설"이라고 혀를 내둘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죠.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웃음 요소도 분위기를 환기하며 시청자들의 '정주행'을 불렀는데요.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공개 이튿날인 오늘(24일)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증명했는데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1화부터 너무 재밌다", "돈 냄새가 너무 난다. 넷플릭스 자본을 느꼈다", "제작진을 가두고 당장 다음 시즌을 제작하게 하라" 등 살벌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죠.

'크라임씬 제로'에는 더 큰 기대가 모입니다. 단순히 새 시즌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K-예능의 매력적인 한 장르를 글로벌 무대에 안착시키는 시도로도 해석되기 때문인데요. 지난 '크라임씬 리턴즈'는 토종 OTT 티빙에서 베일을 벗었지만, 이번 시즌은 시리즈 최초로 넷플릭스와 만났습니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되죠.
글로벌 OTT의 유통망을 통해 아시아권뿐 아니라 영어권·남미권 시청자에게도 포맷이 노출되면서 한국 예능의 장르 다변화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데요. 앞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등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K-예능의 저력을 빛낸 바 있죠. '크라임씬 제로'가 공개 직후 국내 톱 10 시리즈 1위에 오른 건 우선 시작에 불과한 셈입니다. 관찰·오디션·서바이벌에 집중돼 있던 기존 한국 예능 수출 시장에 '크라임씬 제로'는 추리극 기반의 참여형 포맷으로서 차별성까지 확보한 상황이라 기대감이 쏠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레전드 시즌의 서막'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스케일·반전·연기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압도적인 상황. '크라임씬'의 5~8회는 30일, 9~10회는 다음 달 7일 공개됩니다.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는 더욱 복잡한 사건과 게스트들의 합류가 예고돼 있죠. 시즌 후반부엔 또 어떤 이야기와 캐릭터, 반전이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긴장감이 높아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