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건설사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분양 누적과 금융 연체가 겹치면서 지역의 건설사들이 속속 법정관리로 내몰리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수도권 공급 확대에만 치우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 건설 생태계 붕괴 우려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25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8월 종합건설사 437곳이 폐업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4% 늘어난 수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상시 모니터링에서도 부실 위험 단계에 해당하는 업체가 1067곳으로 전체의 38.9%에 달했다.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00곳을 넘어섰다.
특히 폐업한 업체들 대부분은 지방에서 활동하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이다. 시공능력평가 50~250위권 가운데 올 상반기 법정관리를 신청한 9곳 중 6곳도 지방 건설사였다. 충북 충주의 대흥건설, 경남 김해의 대저건설, 경북 경산의 홍성건설, 부산의 삼정이앤시·삼정기업, 광주의 영무토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홍성건설은 지난해 5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미수금 회수가 막히며 결국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처럼 지방 건설사 위기의 핵심은 미분양 적체다. 국토부에 따르면 7월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은 6만2244가구였는데 이 가운데 4만8961가구(78.7%)가 지방에서 발생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역시 총 2만7057가구 중 83.5%인 2만2589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미분양 장기화는 곧바로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진다. 분양대금 회수가 막히면서 미수금과 금융 연체가 급증하고 결국 법정관리나 폐업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도급 업체와 근로자까지 연쇄 타격을 입는 만큼 지역경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 정책 방향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우선 정책을 검토하겠다’며 지역 균형 발전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당시 발표 역시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 건설·주택 시장에서 지방을 살릴 구체적 대책은 빠져 있었다.
9·7 공급대책 역시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 확대와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도심 고밀 개발 등도 모두 수도권 중심 대책이다. 지방 건설사들이 요구해 온 금융 지원이나 실수요 확대책은 사실상 배제됐다.
정부가 내놓은 유일한 ‘지방 대책’은 LH의 준공 후 미분양 매입 확대지만 이마저도 매입 규모가 전국 8000가구에 불과해 감정가의 90% 수준에서 이뤄져 업체들이 체감할 효과는 제한적이다. 실제로 지방 전체 악성 미분양 물량(2만7000가구)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업계 반응 역시 냉담하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미분양 매입 등 단기적 처방에 그치고 있어 지방 건설사들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한 지방 건설사 관계자는 “수도권 입성이 어렵고 지방 분양시장도 침체돼 미분양 적체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며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 면제나 취득세 감면 같은 세제 혜택이 필요하고 LH 매입 물량은 미미하고 조건도 까다로워 미분양 해소 효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지방 분양과 건설사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이 수도권과 공급에 치우쳐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LH 매입 목표 물량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실제 매입 속도와 규모는 부족하다. 지방 건설사들이 당장 버틸 수 있도록 신속한 매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