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안 믿었던
사랑의 종말론
It's over tonight
낭만 대신 종말, 고백 대신 선언.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은 흔한 사랑 노래의 수사 대신, 종말론적 예언으로 시작한다. 듣는 순간 묘한 당혹감이 찾아온다. 사랑의 종말이라니, 과연 그럴까.
이찬혁은 곧바로 질문을 던진다. “Where the hell is EROS going.” 사랑의 신 에로스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는 단순한 연애의 부재가 아니다. 우리를 뜨겁게 만들던 열정, 서로를 묶어주던 신뢰, 삶을 움직이던 본능이 자취를 감춘 시대를 묻는다.
![▲이찬혁이 두 번째 정규 앨범 [EROS] (출처 = VIBE 캡처)](https://img.etoday.co.kr/pto_db/2025/09/20250923094340_2230186_360_360.jpg)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후렴은 과거를 회상한다. 누구나 하나의 마음에 하나의 사랑을 지녔던 시절, 사랑은 단순했지만 진정성이 있었다. 지금의 사랑은 어떠한가. 앱에서 만나 빠르게 소비되고, 피로를 남긴 채 흩어진다.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놓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은유는 단순한 가사 속 상상이 아니다. 현실의 수치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율은 1천 명당 3.7쌍으로,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는 20대 미혼남성의 63%, 여성의 49%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랑은 노래 속 비유가 아니라, 실제 숫자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사랑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적 장벽이다. 피앰아이의 전국미혼남녀조사(2024)에서는 연애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경제적 원인’이 17.2%로 가장 높게 꼽혔다. 한국경제신문 조사(2025)에서도 연애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이유 중 39.6%가 ‘경제적 부담’이었다. 사랑은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여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노래는 마지막에 작은 불씨를 남긴다.
‘멸종위기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장송곡이자 선언문, 동시에 희망의 예언서다. 사랑은 정말 멸종 위기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중일까. 노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곡이 끝난 뒤에도 오래 귓가에 남아, 다시 듣고 싶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