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주도 펀드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 자본시장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었다. 벤처 생태계가 자리 잡고, 성장기업이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태펀드를 비롯한 각종 정책펀드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과도한 정부 의존과 책임소재 불분명, 부처별 난립 등 구조적 한계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21일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벤처투자액은 7조68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78%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유니콘 기업 수도 3곳에서 18곳으로 늘었다. 정부 재정이 마중물이 되고 민간이 뒤따르는 구조 덕분에, 코로나19 충격 속에서도 창업·벤처 생태계가 성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성과만큼 한계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높은 정부 의존도다. 2022년 기준 국내 벤처투자의 3분의 1 이상이 정부 재원에 기대고 있다. 정부 돈 없이는 시장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기존 정책펀드가 정부 자금 20~30%에 민간 자본을 연계하는 방식이었다면, 국민성장펀드는 정부 재원이 절반에 달한다. 사실상 민간은 정부 주도 틀에 따라붙는 구조로 ‘정부 의존 심화’ 비판은 불가피하다.
투자 실패의 책임 주체가 모호한 것도 고질적 문제다. 손실이 발생하면 책임의 주체가 정부인지, 모태펀드 운용사인지, 개별 벤처캐피털인지 불분명하다. 실제로 손실이 생기고도 명확한 책임 소지나 성과 평가 체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들이 적지 않다. 또 정책펀드는 단순 수익률보다는 일자리, 기술, 수출 같은 정책적 성과를 봐야 하지만 이를 측정할 뚜렷한 지표가 없다.
부처 별로 유사한 정책펀드를 앞다퉈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각자 펀드를 운영하다 보니 비슷한 목적의 펀드가 중복되고 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야에서는 동일 기업이 여러 펀드의 지원을 중복해 받는 사례도 있다. 이는 예산 낭비와 자원 배분 왜곡으로 이어진다.



